2016년 10월 1일 잠실야구장에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시즌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LG 유니폼을 입은 30대 남성팬이 원정팀 SK의 치어리더 A씨를 성추행을 했다. 9회말 종료 후 의상을 갈아입기 위해 3루 쪽 화장실로 향하던 A씨의 신체 일부를 만진 것이다. 마침 근처에 있던 SK 구단 직원이 이 남성을 제압했고, 응원단장과 함께 인근 잠실지구대로 이동해 경찰 조사를 받았다. 처음에 가해 남성은 다른 관중들에 밀려 손이 닿았을 뿐이라며 범행을 일절 부정했지만 경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추행 사실을 인정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강제추행 혐의로 이 남성을 불구속 입건해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까운 곳에 있던 직원의 도움 덕분에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모든 절차가 매끄러웠던 것은 아니다. 먼저 성추행을 당한 A씨가 가해 남성과 보안요원, 구단 직원에게 둘러싸여 사건의 전말을 직접 설명해야 했다. 이들 모두 남자였고, A씨가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던 걸 감안했다면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해 남성이 어디서 신체 어디를 만졌는지 직접 설명해야 했을 A씨는 추가적인 수치심과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여성에 대한 성추행 관련 신고가 들어오면 무조건 여성 경찰관이 출동하도록 되어있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문이다.
그나마 원정팀인 SK는 성추행 피해자인 A씨가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가해 남성 앞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울먹이는 A씨를 위해 SK 응원단장이 가해 남성을 격리시켰고, 지구대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옆을 지켰다. 구단 차원에서도 피해자의 신변보호와 인권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며 A씨를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반면 홈팀 LG 트윈스의 대처는 원정팀의 대처와는 사뭇 상반된 양상을 보였다. LG 측은 자신들이 직접 관리하는 홈구장에서 벌어진 사건에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가해 남성과 A씨가 직접 해결할 문제라며 “이런 사건은 우리(LG 측)가 중간에 나설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구단 홍보를 총괄하는 이형근 홍보팀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질문에 “지하철에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것이랑 마찬가지다. 성추행범과 성추행 당한 사람이 경찰을 불러서 서로 해결할 문제”라고 답했다. 심지어 “가해 남성이 정말 우리 LG팬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LG 유니폼을 입은 관중이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라며 이번 사건에 구단이 직접 연관되는 것을 피하려 했다.
잠실야구장에서 원정팀이 사용하는 시설과 동선 등에 대한 질문에 이 팀장은 역시 난처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잠실야구장을 방문하는 원정팀 치어리더는 의상을 갈아입을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없어 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팀이 수비를 하는 동안 단상에 오르지 않는 치어리더들이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마저도 없다. 그래서 팬들도 이용하는 화장실에서 김밥을 꾸역꾸역 먹어가며 의상을 갈아입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날 A씨가 의상을 갈아입기 위해 화장실로 향하던 길에 추행을 당한 것이 알려지면서 잠실야구장 내 치어리더의 안전 확보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LG 측은 “그런 건(치어리더들의 안전 확보는) 안전요원들이 하는 게 아니다.”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오히려 “치어리더를 위한 보안 동선은 없다. 하려면 대통령처럼 줄을 서서 해야 하는데, 선수들처럼 그렇게 해줄 수는 없다. 그건 오버다.”라며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 팀장이 ‘오버’라고 말한 치어리더 보안 동선 확보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치어리더 이동 통로와 같은 야구장 내 시설을 새로 만들거나 보수하는 데 큰 장애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특별시 체육시설 민간위탁방침에 따라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는 2000년부터 서울시로부터 잠실야구장 운영권을 넘겨받았다. 따라서 두 구단은 잠실야구장 내부의 시설을 추가적으로 설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09년 LG 트윈스는 홈경기에 한해서 외야 펜스를 앞당기는, 이른바 X-존을 설치한 바 있다. 그렇기에 이 팀장의 구장 내 추가적인 이동 통로를 만드는 것이 ‘오버’라는 말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인기 구단의 입장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져 당혹스러웠을 것은 이해하지만, LG 트윈스는 비난받지 않기 위해 자기 팀을 응원하는 팬도 저버리고, 그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 여성의 인권마저도 저버렸다. 나아가 뉴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까지 이르렀다. “이번 일은 기사거리도 아니다. 많고 많은 사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포털에서 기사화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 팀장의 발언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제 흠결 감추기에 급급한 홍보 책임자의 무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 팀장의 능력이 빛났는지, 이번 사건과 관련된 기사는 포털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LG 트윈스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과 일부 커뮤니티에서만 몇몇 목격담이 올라올 뿐이었다. 다음날인 2일이 돼서야 일부 채널에서 사건이 보도됐다. 이마저도 포털사이트에 올라오지 않아서 사건의 전말을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일부만이 관련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최소한의 사건 보도조차 되지 않는 상황을 설명하듯 LG 트윈스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구단 홈페이지에서는 1일 일어난 성추행 사건에 대한 일언반구도 보이지 않는다. 사건이 대중의 기억에서 잊히고 관심이 뜸해져 조용히 묻히기만 기다리는 모양이다. 눈과 귀를 등딱지 깊숙이 밀어 넣은 거북이마냥 웅크려있을 뿐이다. 반면 LG 트윈스 홈페이지 내 팬 커뮤니티에서는 이 팀장을 비롯한 구단의 사죄와 재발 방지 약속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건 수습 과정에서 관계자들의 안일한 태도를 꼬집는 비판과 SK 팬들과 A씨에게 대신 전하는 사과의 글도 속속 올라오고 있다.
팬 커뮤니티 게시글 일부. 사진/LG 트윈스 홈페이지
최고 인기 구단을 자처하는 팀이 논란 앞에 뒷짐 지고 있는 동안 A씨가 받은 상처는 곪아갔다. 상처 입은 한 사람에게 보여준 구단과 책임자의 표정은 오만했고, 자세는 방만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오만과 방만으로 내비쳤던 자신감이 확신으로 바뀌자 사건은 실제로 뉴스가 되지 못했다. 하늘을 가릴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손바닥이 하늘을 가려버렸다. 어쩌면 LG 측과 이형근 홍보팀장은 하늘을 가리는 손바닥을 보면서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감히 하늘을 가리고자 하는 그들이 손바닥 틈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을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