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맛지도] 쌀쌀한 날 마음까지 따뜻하게, 신촌 조선의 육개장 칼국수

입력 : 2016-10-27 오전 9:48:59
“내 위장은 지금 뭘 먹고 싶은 걸까.”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고로 씨가 끼니때가 되어 공복을 느낄 때마다 세상 심각한 얼굴로 좁은 골목길을 헤매면서 하는 생각이다. 그는 식당 외관이 풍기는 분위기와 메뉴판까지 신속하게, 하지만 신중하게 훑으며 위장에게 줄 선물을 고른다.
 
한창 강의를 듣고 있는데 문득 꼬르륵 소리와 함께 배고픔이 밀려온다. 수업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라며 고로 씨처럼 진지하게 내 위장이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 자문해본다. 드디어 맞이한 가을 초입에서, 열린 창문을 통해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간질인다. 위장은 답을 내렸다. 오늘 저녁은 육칼이다!
 
 
식당 입구. 사진/바람아시아
 
 
햇수로 3년째 찾아가고 있는 이 집은 신촌역 유플렉스 출구와 창서초등학교 사이를 잇는 길목에 있다. 왼쪽으로 비둘기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공원을 끼고 조금만 걷다보면, 조선의 육개장 칼국수 간판과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들이 보인다. 한 걸음씩 따라 내려가면 소박하고 정갈한, 그래서 더욱 정겨운 장소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 자리를 잡고 앉아서 늘 오는 사람처럼 익숙하게 “육개장 n개 주세요!”를 외치면 된다. 
 
식당 사진. 사진/바람아시아
 
 
곧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차려진다. 
 
 
음식 전체 샷. 사진/바람아시아
 
간소해보이지만 반찬이 가져야 할 조건을 모두 갖춘 깍두기와 양파 장아찌. 군침을 돌게 하는 육개장. 통통한 칼국수 면발. 반 정도 채워진 공깃밥. 그리고 막걸리 한 잔까지 식탁 위에 올라온다.
 
먼저 육개장 국물을 한 입 먹어보면, 지금까지 접해왔던 육개장과는 다른 맛이 느껴진다. 육개장하면 떠오르는 빨간 맛은 약해지고, 그만큼 사골의 하얀 맛이 더 강해졌다고 설명하고 싶다. 
 
 
국수. 사진/바람아시아
 
 
“면 먼저 넣어 드세요.”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주신 분의 말을 따라 칼국수 면을 육개장에 넣는다. 육개장에 면을 넣어 먹다니! 뭔가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국물이 곁들어진 면을 후루룩 먹으면 묘하게 조화롭다.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역설적이지만 환상적인 맛이랄까. 적당히 얼큰하고 진한 국물이 면과 함께 먹어도 짜지 않고 맛있다. 사골 육수와 차돌양지를 전통 무쇠 가마솥으로 푹 고아냈다고 한다. 뜨거운 음식을 먹으니 속도 따뜻해지고 슬슬 더워진다. 이럴 때 막걸리로 목을 적셔주면 열기가 조금 가라앉는다.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고 즐기지도 않지만 이곳에 오면 몇 모금씩 마시게 된다. 막걸리의 고소함이 육개장의 맛을 더 깊게 만들어 주는데 한 몫 하는 것 같다.
 
 
밥 말아놓은 사진/바람아시아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던 위장을 육개장 칼국수로 달래주었더니 조금 진정된 듯싶다. 그렇다면 이제 밥을 말아 먹을 차례다. 너무 맛있다고 칼국수로 배를 다 채워버리면 그것은 하수. 진정한 고수라면 위장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칼국수와 밥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적절하게 마련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밥알이 국물과 함께 들어가니 무언가 2% 부족했던 배가 든든하게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지금도 유효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쌀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점심에 면류를 먹으면 저녁에는 밥을 먹어줘야 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다. 이 집에 오면 밥도 먹고 면도 먹을 수 있어서 한 끼 제대로 했다는 생각과 함께 의무를 지켰다는 뿌듯함까지 느낄 수 있다. 
 
 
빈 그릇. 사진/바람아시아
 
 
헛헛하던 속을 제대로 채우고 계산을 한 뒤 계단을 올라간다. 어느 덧 날은 어둑어둑해져 있고 불어오는 바람도 쌀쌀하다. 후끈후끈한 속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가을의 차가운 기운이 만나 왠지 절묘하다. 천 원짜리 다섯 장과 오백 원으로 몸 안에 보일러를 은근하게 틀어놓은 기분이다. 그 열기가 마음까지 전해져 따뜻한 기분으로 신촌 거리를 걷다보니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오프닝 멘트가 떠오른다.
 
“시간과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배를 채울 때 잠시 동안 그는 이기적이고 자유로워진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으며 음식을 먹는 고독한 행위. 이야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힐링(healing)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민선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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