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알고 지내는 소아신경과 전문의 선생님으로부터 다음의 질문을 받았다. “한약에도 양방처럼 항경련제 같이 경련을 직접 억제하는 약이 있나요?” 그 분은 양방치료의 한계가 있는 영역에서는 한방치료 사용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열린 사고를 지닌 분이었다. 필자의 대답은 너무도 간단했다. “아니요. 없습니다.”
양방의 뇌전증 치료법은 아주 간단하다. 장기적인 의미로 간질을 치료하기 보다는 12시간동안의 경련 억제를 목표로 투약한다. 물론 다양한 부작용이 동반된다. 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건망증 증가, 졸음, 우울증, 의욕저하, 인지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한방치료는 직접적으로 경련을 억제하는 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크게 보면 두 가지 접근법으로 치료를 진행한다. 첫째로는 경련을 유발하는 유발요인을 제거하는 방식을 통해 경련 발생률을 떨어뜨린다. 둘째로는 뇌의 대사를 활성화시켜 경련 억제력이 증가되기를 유도한다. 즉 직접적인 경련억제가 아닌 간접적 억제법이다.
이런 치료법은 성장기 소아간질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소아간질의 상당수는 양성적 경과를 보이게 되며 예후가 좋은 간질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작용 없이 경련의 조절력을 키울 수 있어 성장기 어린이에게 큰 도움이 된다. 또한 난치성 간질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항경련제를 두 가지 이상 사용해도 경련 조절이 안 되는 뇌전증을 약물난치성간질이라 하는데 이런 경우 한방치료를 병행하면 경련조절력이 현격하게 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토마토 간질 클리닉에서 "Evidence-Based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에 발표한 논문도 같은 맥락이다. 약물난치성 간질 경과를 보이는 소아뇌전증에 한방치료를 병행하여 우수한 치료효과를 낸 임상 논문이었다.
그러나 부상위험이 현격하거나 발달장애가 심각하게 동반되는 뇌전증이라면 무조건 한방치료만을 고집하는 것은 우매한 짓이다. 이런 경우 양방의 항경련제 사용이 필수적인 경우도 많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뇌파 판독에 기초하여 뇌전증의 예후를 정확히 판단 할 수 있는 전문가의 진료가 필수적이다.
한방치료의 문제점만 주장하며 배격하는 양방 치료법도 문제지만 항경련제 부작용을 이유로 무조건 한방치료만을 주장하는 한의사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다. 무엇이 좋은가 하는 단순 비교가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다.
◇ 김문주 아이토마토한방병원 대표원장
- 연세대학교 생명공학 졸업
- 가천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 (전) 한의사협회 보험약무이사
- (전) 한의사협회 보험위원
- (현) 한의학 발전을 위한 열린포럼 운영위원
- (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
- (전) 자연인 한의원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