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의 정치학)③한국 정치사에 나타난 연정의 흥망성쇠

30년 가까이 유지된 ‘3당합당’-대선승리 달성한 ‘DJP연합’-이해받지 못한 ‘노무현 대연정’

입력 : 2017-03-08 오후 3:30:00
[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 연정은 사전적 의미로 둘 이상의 정당이 연합해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국정운영 혹은 대선 승리, 정치개혁 등이 목표로, 한국 현대 정치사의 결정적인 장면에서 자주 발견되고 있다.
 
우선 지난 1990년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노태우)과 야당인 통일민주당(김영삼, YS), 신민주공화당(김종필, JP)이 손을 잡고 민주자유당을 만든 ‘3당 합당’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대연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당 하나를 세 야당이 포위하던 여소야대 4당체제를 거대 여당 민자당과 평화민주당(김대중, DJ)이 대립하는 양당체제로 전환했다. 국민의 여소야대 총의를 몇몇 정치지도자가 뒤집어버린 ‘야합’이라는 비판 목소리가 높았지만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부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도왔고 YS 정부 탄생에도 성공한다.
 
국내 정치 지형도를 보수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든 민자당은 이후 당내 주도세력은 그때그때 교체됐지만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며 그 명맥을 30년 가까이 성공적으로 이어왔다. 그러나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을 계기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당된다.
지난 1990년 2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민주자유당 김영삼·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과 오찬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e-영상역사관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DJ)와 자유민주연합(JP)이 손을 잡고 결성한 ‘DJP 연합’은 대선 승리를 위한 연정이다. 대구·경북(TK)의 박태준(TJ)을 포함해 ‘DJT 연합’이라고도 불린다.
 
DJP연합은 DJ의 대선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의 총 득표차는 39만여표에 불과했지만, DJ는 JP의 텃밭 충청에서 43만여 표를 앞섰고, TK에서도 1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방한다.
 
대통령이 된 DJ는 JP와 TJ를 차례로 총리에 임명하고, 각종 경제부처 수장의 임명권도 넘긴다. 두 당의 협력은 당시 IMF사태 극복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러나 16대 총선에서 선거공조를 이루지 못해 원내과반수 확보에 실패한다. 여기에 의원내각제 개헌이 무산되고 햇볕정책을 둘러싼 양 당의 마찰이 커지면서 DJP연합은 2001년 좌초하게 된다.
지난 1997년 12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여의도 63빌딩에서 자유민주연합 김종필·박태준 총재와 오찬을 함께 하는 모습이다. 출처/e-영상역사관
 
2005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한다. 선거구제 개편으로 지역구도를 타파하겠다는 일종의 ‘정치 개혁’이 목표였다. 노 대통령은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며 총리직을 포함한 장관임명권을 한나라당에 제시했지만 당시 박근혜 대표는 “민생에나 신경쓰라”며 단칼에 거절한다.
 
노 대통령은 반년 가까이 연정을 시도하지만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이어져 오히려 노 대통령의 지지층이 대거 이탈하게 된다. 결국 노 대통령도 퇴임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수류탄을 (한나라당에) 던졌는데 그게 우리 진영에서 터져버렸다”며 “나의 자만심이 만들어낸 오류”라고 회고한다.
 
지난 2005년 07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을 방문해 ‘한나라당 주도 대연정’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e-영상역사관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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