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많은 헌법 전문 법률가들의 예상대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 중 헌법상 ‘국민의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세월호 7시간)’을 두고 사실상 유일하게 헌법 재판관들 의견이 엇갈렸다. 재판관들은 10일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에서 이 의무가 탄핵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는 큰 틀에서는 의견이 일치했지만, 세월호 참사 당시 행적과 주장 등에 대해서는 6대 2로 판단이 달랐다. 평결을 선고 당일로 미루면서까지 전원이 완전히 일치된 의견을 내기 위해 재판관 모두가 노력했지만 이견이 남은 유일한 쟁점이기도 하다.
김이수·이진성 재판관 16면에 걸쳐 의견 내
재판부의 선고기일 지정이 늦었던 이유도 '세월호 7시간'으로 보인다. 총 89페이지로 구성된 결정문에서 할애한 분량만 보더라도 그렇다. 재판관 다수 의견은 결정문 50~55페이지까지 5면을 할애했지만 별개 의견을 낸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58~74페이지까지 장장 16면에 걸친 별개의견으로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헌법상 의무 위반’을 치열하게 지적한 흔적이 엿보인다.
'세월호 7시간'을 두고 재판관들이 다툰 쟁점은 생명권 보호의무의 전제가 되는 헌법상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가 사법상 판단 대상이 되는지 여부였다.
다수의견은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에 필요한 보괄적 의무를 진다고 전제했다.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 위헌확인 사건’에서 헌재가 확인한 내용이다. 다수 의견은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보호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하고 직책을 수행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지만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상황이 발생했다고 해서 대통령이 직접구조 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로 많은 국민이 사망했고 그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응조치가 미흡하고 부적절한 면이 있었다고 해서 곧바로 박 대통령이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그 밖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고 지적했다.
다수 "성실의무, 사법 판단대상 아니야"
다수 의견은 “헌법 69조가 대통령의 취임 선서를 규정하면서 대통령으로서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선서의 내용을 명시적으로 밝힘으로써 헌법 66조 제2항과 3항에 따라 대통령의 직무에 부과되는 헌법적 의무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그 내용을 구체화하는 규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는 헌법적 의무에 해당하지만,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와는 달리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있는 성격의 의무가 아니다”라며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고 봤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임기 중 성실하게 직책을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고 대통령 단임제를 채택한 현행 헌법 하에서 대통령은 법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국민에 대해 직접적으로는 책임을 질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여부는 간접적으로 그가 소속된 정당에 대하여 정치적 반사이익 또는 불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뿐”이라며 소극적으로 판단했다.
다수의견은 특히 “헌법 65조 1항은 탄핵사유를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절차는 법적 관점에서 단지 탄핵사유의 존부만을 판단하는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여부는 그 자체로 소추사유가 될 수 없어,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이 "성실의무,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김 재판관과 이 재판관도 박 대통령의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부분을 탄핵소추사유로 볼 수 없다는 결론에서는 다수의견과 같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했다고 명백히 인정했다. 헌법상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법규에 따라 이행이 가능한 의무라고 본 것이다.
김 재판관 등은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이 탄핵 사유가 되는지 여부에 대해 “직책수행의 성실성에 관한 추상적 판단에 그치지 않고, 헌법이나 법률에 따라 대통령에게 성실한 직책수행의무가 구체적으로 부여되는 경우 그 의무 위반은 헌법 또는 법률 위반이 되어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탄핵 사유를 구성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가공무원법상 ‘모든 공무원은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공무원의 성실 의무를 규정하고 있어 어느 공무원이든 이를 위반한 경우 징계사유가 되는데 대통령이라고 해서 달리 적용해야 할 명문규정이나 해석상 근거가 없다”며 “대통령도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에 위반한 경우에는 사법적 판단이 가능하고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위의무 생기면 사법심사 대상"
또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국가위기 상황에 대한 시의적절한 조치를 취해 국가와 국민을 보호할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부담한다”고 인정했다. 이어 “국가위기에는 자연재난이나 사회재난, 테러 등으로 인한 안보 위기 역시 포함되며, 현대 국가에서는 후자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며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작위의무가 부여된 경우에는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단순히 도의적, 정치적 의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법적 의무이고, 그 불이행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 재판관 등은 이 같은 해석에서 볼 때 “세월호 참사를 보고 받은 당시는 다수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하고 급박한 위험이 가해지거나 가능성이 있는 명백한 국가 위기 상황”이었다며 “박 대통령은 성실하게 이행했어야 할 직책상의 수행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가장 문제삼은 것은 출근이었다. 김 재판관 등은 세월호 참사 당시 구체적 보고 시간을 짚어가면서 “박 대통령이 오전 9시까지 집무실로 정상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물면서 불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함에 따라, 구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초기에 30분이상 발생 사실을 늦게 인식”했다며 박 대통령이 성실하게 직책상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된 이유를 지적했다.
"정상 출근 안 한 것이 가장 문제"
박 대통령은 참사 당일 오후 1시 7~13분쯤 사회안전비서관실과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190명이 추가 구조돼 총 370명이 구조됐다’는 보도가 나왔다는 보고를 받아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판단했다가 김 실장이 오후 2시50분쯤 보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보고해 오후 3시에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중대본 방문을 바로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재판관 등은 박 대통령이 출근만 정상적으로 했어도 그 전에 상황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 재판관 등은 “청와대는 오전 11시7분쯤 해경에 문의해 ‘학생 전원구조’라는 언론보도가 오보라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며 “오보는 박 대통령의 상황의 심각성 판단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11시10분쯤부터는 해경 513호에서 송출한 이엔지(ENG) 영상이 청와대 상황실로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어, 박 대통령이 당시 청와대 상황실에 위치했다면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며 “오전 10시 이후에도 박 대통령이 조금만 노력을 기울였다면 그 심각성을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고 판단했다.
김 재판관과 이 재판관은 특히 “무릇 국가의 지도자는 안전한 상황보다는 위험한 상황에 대하여 훨씬 많은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는 법이고 그래야 마땅하다”며 “박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상황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고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낙관적 보고에만 관심을 가져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판단한 셈이 되는데, 이는 그 자체로 위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불성실함을 드러내는 징표”라고 질책했다.
"대통령, 낙관적 보고에만 관심…불성실 징표"
관저에서 보고를 받고 업무를 수행했다는 박 대통령의 주장도 김 재판관 등은 “당일은 휴일이 아니었으므로, 박 대통령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업무시간 중에는 집무실에 출근하여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고 일축했다.
특히 “대형 재난이 발생해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국가위기 상황의 경우에는 최고행정책임자인 박 대통령은 즉각적인 의사소통과 신속하고 정확한 업무수행을 위해 청와대 상황실에 위치했어야 한다”며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그 심각성을 인식한 시점부터 약 7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관저에 있으면서 전화로 원론적인 지시를 했고, 이는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김 재판관과 이 재판관은 그러나 “당시 상황에 적용되는 행위의무를 규정한 구체적 법률을 위반했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박 대통령이 성실의무를 현저하게 위반했지만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 사유만 가지고는 국민이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박탈할 정도로 국민의 신임을 상실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워 파면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히면서 다수 입장에 동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발생 한달 뒤인 2014년 5월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단과 면담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