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다음 날인 11일 열린 ‘촛불집회’는 그 어느 때보다 생기 있고 활기찬 축제 분위기였다. 이날만 전국적으로 70만명의 시민들이 모이면서 누적인원 1600만명이라는 역사적 기록과 함께 지난해 10월29일부터 시작된 134일간의 대장정을 끝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 다음날인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탄핵찬성 촛불집회가 열린 가운데 탄핵인용 축하의 폭죽이 터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로 이날 오후 5시부터 열린 '촛불과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 20차 범국민행동' 집회에는 총 65만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해 박 전 대통령의 파면과 ‘촛불의 승리’를 축하했다. 자유발언과 촛불권리선언문, 공연, 촛불승리 기념 폭죽행사순으로 진행된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의 얼굴은 시종일관 밝은 표정이었다.
기조발언에 나선 김광일 퇴진행동 집회기획팀장은 "지난해 10월29일부터 134일, 1년의 3분의 1 기간 동안 연인원 1600만명이 싸웠다“며 ”12월3일 야당이 갈팡질팡할 때에도 시민 200만명이 거리로 나와 탄핵소추안 가결을 끌어냈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을 탄핵한 민중의 힘을 확인했다"며 촛불집회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의미를 부여했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파면과 함께 공식 촛불집회는 막을 내리지만 적폐청산은 이제 시작이라는 과제에 모두 공감했다.
암투병 중인 MBC 이용마 해직기자도 연단에 올라 적폐청산을 강조했다. 이 기자는 “1600만명 모여 겨우 박근혜 한 사람 대통령직에서 파면시켰지만 새로운 시작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쌓였던 적폐를 이제는 청산해야 할 시기”라며 “사회적 적폐를 청산하는 첫 번째 출발점은 검찰과 언론을 개혁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검찰과 공영언론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다. 언론과 검찰의 인사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광장에선 그동안의 과정과 박 대통령의 파면이라는 목표달성의 의미를 담은 촛불권리선언이 있었다. 선언문에는 공감의 힘이라는 촛불 정신을 되새기고 이번을 기회로 민주주의의 역량을 성장시키자는 각오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10개 분야에 대한 개혁 요구로 담겼다.
본집회 행사 끝에는 폭죽행사와 촛불파도 퍼포먼스가 이어져 장관을 이뤘으며, 행사를 마친 시민들은 도심방면과 청와대 방면, 총리공관으로 각각 행진한 뒤 다시 광화문 광장에 모여 문화제를 즐겼다. 오후 8시쯤 시작된 '촛불 승리 콘서트'에는 전인권, 뜨거운 감자, 한영애, 조PD 등 그동안 촛불집회에서 공연한 예술인들이 대미를 장식했다.
퇴진행동은 이날 집회를 끝으로 주말집회를 종료했으며, 박 전 대통령 구속과 공범자 처벌, 적폐청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퇴진 등에 주력할 예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탄핵인용)된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박사모 등 친박단체가 모인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주최로 ‘제1차 국민저항운동 태극기 집회’가 열리고 있다. 참석자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 십자가, 태극기, 대형성조기를 들고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날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집회도 서울 중구 대한문을 중심으로 열렸다. 주최 단체인 ‘대통령탄핵무효국민저항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는 박 전 대통령 탄핵과 함께 공식 명칭을 '탄핵무효국민저항국민저항총궐기운동본부(국민저항)'으로 바꿨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열린 집회 분위기는 침울하고 무거웠다. 전날 박 전 대통령 지지자 3명이 집회 중 사고로 사망하고 부상자도 다수 발생한 충격 때문에 참여자 가운데는 울먹이는 시민들도 더러 있었다.
정광택 공동대표는 기조발언에서 “많이 아프고 혼란스럽지만 우리는 이 나라가 바로서고 정의와 진실의 나라가 될 때까지 함께해야 한다"고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다독였다. 또 전날 헌법재판소 앞에서 발생한 사고와 관련해 "버스에 줄을 메고 당기는 걸 볼 때 기절할 뻔 했다. 그건 우리의 정신과는 전혀 다른 종북좌파들의 행동 아니냐”며 “법과 질서를 지키고 난폭한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대리인단 소속이었던 김평우 변호사도 “먼저 냉정한 사실부터 인정하자. 이 나라의 법치주의는 죽었다”며 “다음 목표는 제2의 건국투쟁에 나가자”고 외쳐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호응을 호소했다. 김 변호사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목도리처럼 만들어 목에 걸고 나와 준비해 온 원고를 38분간 읽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날 조간신문에 '오늘부터 우리는 제2건국의 행군을 시작합시다!'라는 광고를 개인 이름으로 싣기도 했다.
‘바람 불면 촛불도 꺼진다’는 막말로 유명세를 탄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도 헌재 결정을 ‘특검수사결정문 발표’라고 비하하면서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시민들에게 독려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헌법재판소에 맡겼지만 이제는 안 되겠다. 정신 바짝차리자. 승부는 이제 부터”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에 대한 압수수색 거부는 법원에서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탄핵사유에 집어넣은 것은 헌재결정문이 아니고 특검수사결과발표문”이라며 “이런 헌재에 대한민국의 운명을 맡겨서 되겠느냐. 이제 우리 힘으로 59일 후에 황교안이 됐든 누가 됐든 제대로 해보자”면서 대선을 겨냥해 발언했다.
경찰은 이날 촛불·태극기집회 충돌에 대비하기 위해 207개 중대 1만6500여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지지자 모임 간부 2명이 서울 중구 태평로파출소 앞에서 인화물질을 뿌리고 경찰에 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는 사건 외에 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친박단체 간부 박모씨 등 2명이 서울 중구 태평로파출소 앞에서 “불을 지르겠다”며 인화물질을 뿌리고 경찰에 폭력을 휘두른 혐의(공무집행방해)로 불구속 입건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박 전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에서 사망사고를 발생시킨 정모(65)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검찰을 통해 청구했다. 정씨는 전날 헌재 탄핵심판 선고 후 경찰 버스를 탈취해 운전하다 차벽을 들이받아 차량 스피커를 떨어트려 당시 그 아래에 있던 김모(72)씨를 숨지게 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 공용물건손상, 폭행치사) 등을 받고 있다. 탄핵 반대집회 사고 사망자는 이날 현재 김씨를 비롯해 총 3명이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