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검찰이 최초로 외국으로 유출된 범죄수익을 환수해 피해자에게 반환했다.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은 미국 정부와 공조해 지난 2007년 미국에 유출된 금융 다단계 사기 범죄수익 약 9억8000만원을 환수한 후 691명의 피해자에게 반환 조처했다고 24일 밝혔다.
앞서 A씨는 2007년 7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외환 투자회사를 상장해 이익을 내주겠다면서 이른바 '금융 다단계' 방식으로 피해자 1800여명으로부터 296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2007년 11월 범죄수익 중 19억6000만원의 자금 세탁해 미국으로 송금하고, 부인 명의로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빌라를 매입한 혐의도 적용됐다. 이러한 사기·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은 A씨는 2010년 10월 징역 9년이 확정됐다.
대검 국제협력단은 A씨의 형이 확정되자 미국 국토안보수사국 한국지부에 '부동산 몰수·범죄수익 환수' 공조를 요청했고, 캘리포니아 중부연방검찰청은 2011년 12월 법원에 민사몰수를 청구했다. 미국은 특정 재산이 범죄수익에 해당하면 형사기소 없이 민사소송에 따른 민사몰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중부연방법원은 2012년 2월 몰수 허가를 결정했고, 2013년 3월 개시된 공매에서 96만5000만달러에 낙찰돼 그해 5월 낙찰 대금이 완납됐다.
이후 국제협력단이 진행한 미국 법무부·연방검찰과의 국내환수 절차 협의는 국내법적 근거가 없어 환수가 장기간 지연됐고, 결국 국제협력단은 2015년 11월 미국 연방검찰에 미국법상의 몰수 면제·피해자 환부 제도에 따라 반환을 요청한다는 취지로 공식 제안했다. 이 제도는 피해자 등 무고한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해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법무부 장관의 재량으로 범죄행위로 취득한 자산의 몰수를 면제하고, 피해자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해 9월 몰수 면제·피해자 환부 절차에 따라 우리나라 피해자에게 반환하되 대검이 피해자의 신청을 받아 전체 피해자 명단과 피해자별 피해액을 미국에 보내면 공매대금 중 비용을 공제한 금액을 반환하겠다는 취지로 몰수금 반환을 결정했다. 대검은 그해 11월 총 15명의 검사와 수사관으로 구성된 '미국유출 범죄피해금 환부지원팀'을 설치해 약 2개월간 전체 피해자를 심사해 최종적으로 피해 내용을 확인했다.
결국 대검은 올해 1월24일 미국 법무부에 피해자 691명의 명단과 피해금 139억원의 내용을 보냈고, 지난 23일 피해금 총 87만8000달러(약 9억8000만원)를 송금받아 피해액에 비례해 피해자에게 배분했다. 피해자 1인당 평균 돌려받은 금액은 140만원이다. 이에 피해자 모두 "10년 전에 사기를 당해 포기한 것을 국가가 일부나마 찾아준 것에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 관계자는 "그동안 환수한 국외유출 범죄수익은 모두 뇌물 등으로 국고 귀속 대상"이라며 "외국으로 유출된 범죄수익을 환수해 범죄 피해자에게 직접 반환한 것은 검찰 역사상 최초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환수를 위해 헌신과 도움을 아끼지 않은 미국 국토안보수사국 전 서울지부장 조태국, 현 지부장 도널드 브룩쉔, 캘리포니아 중부연방검찰청 검사 스티브 웰크, 미국 법무부 자산몰수과 법률자문관 칼리 디롤-블랙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원칙적으로 국가가 범죄 피해재산을 확보해 피해자에게 반환할 법적 근거가 없고, 설사 범죄 피해재산이 외국에서 외국법에 따라 몰수되더라도 이를 국내로 환수해 피해자에게 환부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며 "부패재산몰수법에 예외 규정이 있으나 이는 횡령 또는 배임죄의 피해재산에만 적용되고, 본건과 같이 사기죄의 피해재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검찰청.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