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 YOLO 열풍, 그리고 그 다음

입력 : 2017-06-02 오전 6:00:00
“저 일 그만두고 오토바이 사서 시베리아 횡단하고 싶어요.”
 
몇 년 전 한 후배가 찾아와 상담을 요청했다. 적은 연봉과 고단한 일상, 상처만 남은 연애, 꼬여만 가는 가정형편 등 나름의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던 후배는 차라리 그동안 모은 푼돈에 퇴직금 등을 보태 좋아하는 오토바이나 실컷 타면서 시베리아를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이는 이미 30살을 넘겼는데 모아놓은 돈도, 연애도, 결혼도, 내 집 장만도 남 일인 것만 같은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미 사회질서에 적응해버린 나는 몇 달을 말렸다. 내 쓸데없는 참견이 먹혔는지 그 후배는 시베리아를 가지 못했고, 아직도 갈팡질팡한 삶을 버텨내고 있다.
 
최근 각종 TV 프로그램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듯 지금 가장 핫한 트렌드에 욜로를 빼놓을 수 없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내놓은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도 올해 마케팅 트렌드를 주도할 10가지 중 하나로 욜로를 꼽은 바 있다. 
 
욜로는 한 번 사는 인생(You Only Live Once)의 앞글자를 딴 말로 캐나다 출신의 래퍼 드레이크가 2011년 유행시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사용하기도 했다. 주로 보험·연금·저축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대신 현재의 행복에 집중해 자기주도적인 소비를 실천하는 방식을 많이 쓰인다. 하지만, 오늘의 행복에 집중하자는 욜로는 우리나라에서 역설적으로 ‘불확실한 미래’가 강조되며 보다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쉽게 얘기하면 매년 오르지 않는 연봉으로 불안정한 직장을 다니며 1억원 이상 필요하다는 결혼비용 마련, 10년을 모아도 어렵다는 내 집 장만을 위해 저금리를 뚫고 싸우는 것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얘기로 바뀐다. 청년실업률이 최고치를 기록하고, 비정규직 문제가 여전하며, 집값 문제는 나날이 더해가는 상황에서 욜로가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즐거움·사랑·교감·행복 등 긍정적 사고 외에도 자기위안과 분노 등이 더해진다.
 
이는 욜로의 한국형 용어라고 할 수 있는 ‘시발비용’이라는 신조어로 발전하기도 했다. 단순히 충동구매나 지름신 같은 1차원적인 단어와는 달리 ‘스트레스 받아 홧김에 치킨 시키기’, ‘대중교통 대신 짜증나서 택시타기’ 등 평소였으면 미래를 위해 하지 않았을 행위를 감정적으로 하는 행위를 말한다.
 
또다른 비슷한 말로는 ‘탕진잼’이란 신조어도 있다. 모아봐야 몇 푼 안 될 돈, 탕진하듯이 만족스럽게 쓰기나 하자 같은 얘기다. 인형뽑기나 생활용품 같은 소박한 탕진잼부터 여행이나 전자기기 등 통 큰 탕진잼까지 티끌을 모아도 태산이 되지 않자 그저 티끌로라도 당장의 만족을 추구하는 형태다.
 
시발비용이나 탕진잼으로 사는 삶이 지속가능한 만족이나 행복을 줄 수는 없겠지만, 오늘을 사는 젊은 세대에게 이전 세대와는 다른 사회적 압박이 주어진다는 정도는 알 수 있다. 100의 행복이 보이지 않자 1의 행복이라도 느끼겠다는 것이지 그들이라고 정말 탕진하고 패가망신을 자처할리 없다.
 
재밌는 것은 유럽에서는 욜로 라이프를 더이상 트렌디하지 않고 한 철 지난 유행 취급을 한다는 점이다. 요즘 유럽에서는 ‘오캄(OKLM)’과 ‘휘게(Hygge)‘ 같은 생활형태가 유행하고 있다. 프랑스어 ‘Au calme, OKLM’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심신이 평온한 상태, 덴마크어 휘게는 편안함·따뜻함·아늑함·안락함을 뜻해 서로 비슷하다 볼 수 있다.
 
오캄이나 휘게 모두 현실을 즐겨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보내는 삶, 일상 속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안락한 환경에서 오는 행복을 지향한다. 욜로 라이프를 시발비용과 탕진잼으로 소화하는 우리는 욜로 라이프 이후 어떠한 생활형태를 맞이할까. 그때 우리도 스트레스 대신 느긋함과 일상 속 행복을 찾아갈 수 있을까.

 
박용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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