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금융지주 전환시 유보금 3조 출자계획 수립

30대그룹 유보금 역대 최대…"지배구조 개편 악용 가능성"

입력 : 2017-06-12 오후 6:25:54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자사주에 이어 유보금마저 마법을 부릴 기세다. 인적분할 후 신설 지주회사에 유보금을 출자하면 간단하게 지배구조 개편 용도로 활용된다. 유보금을 배당에 쓰면 다수 주주들에게 이득이 분배되지만, 이 경우 지배주주 일가에 혜택을 집중시킬 수 있다.
 
삼성이 포기한 삼성생명 금융지주 방안에는 실제 3조원의 유보금 출자 계획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특검은 총수일가 자산 불리기였다고 지적한 반면, 삼성은 보험사의 부채 리스크에 대비한 이중 장치였다고 반박했다. 결과적으로 유보금 출자 후 지배주주의 자산가치는 커진다. 이런 편법이 가능한 가운데 재벌그룹의 유보금은 역대 최대치로 올라섰다.
 
지난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6차 공판에서는 삼성이 2016년 1~4월경 삼성생명을 금융지주로 전환하려 했던 사안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당국 관계자들이 사전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바탕으로 법정에서 증언했다. 특검과 증언에 따르면 삼성 미래전략실은 2016년 1월 자체적으로 마련한 금융지주 전환 추진 계획에 대해 법리적으로 승인 가능한지 금융위에 사전 검토를 의뢰했다. 추진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증권시장 등의 영향이 커 문의는 비밀리에 이뤄졌다.
 
삼성이 금융위에 제시했던 지주 전환 방안은 삼성생명을 보험지주회사와 보험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는 게 핵심이다. 여기엔 통상 대기업집단에서 자주 활용하는 자사주의 의결권 부활과 함께 유보금 활용 방안이 포함됐다. 삼성생명 유보금 중 이익잉여금 3조원을 분할 후 신설되는 보험지주에 출자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익잉여금에서 이익준비금 등 필요자금을 확보한 후에는 미처분이익잉여금에 대해 주주 배당이 가능하다. 삼성은 미처분이익잉여금 3조원을 출자해 보험지주의 자본을 키우려는 의도였다.
 
금융위는 해당 3조원 출자와 더불어 유배당 계약자에 대한 배당 문제, 비금융계열사 매각 기한에 대한 법리해석 등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고 삼성의 제안을 한차례 반려했다. 삼성은 그러나 전환 추진하면서 생기는 문제는 그때그때 해결하자며 계획을 강행하려 했다. 그러다 2016년 4월 돌연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단기간 내 처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계획을 철회했다.
 
이에 대해 특검은 삼성생명 인적분할 후 이건희 회장 지분을 신설 보험지주에 현물출자하는 방식으로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강화할 수 있다며, 금융지주 전환이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목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금융지주 전환 계획을 관철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청와대의 도움을 얻으려 했다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과 최순실씨 모녀 승마지원 등의 뇌물 혐의와 대가성으로 연결된다는 논리다.
 
반면, 이재용 부회장 측은 당시 국제회계기준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보험회사의 부채 리스크가 대두됐던 시점에 그 대책으로 금융지주 전환을 추진했다고 반박했다. IFRS4-2가 도입되면 기업 부채 산정은 기존 원가법에서 시가평가로 바뀌게 된다. 장기계약 상품이 많은 보험사가 특히 위험하다. 당시 시장에서는 삼성생명 부채가 IFRS4-2 도입으로 20조원가량 급증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됐다. 변호인은 삼성이 3조원을 보험지주에 출자해 그 자금으로 차입을 한 다음 보험사업회사의 유상증자에 참여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금융지주법상 금융지주는 자기자본의 2배까지 차입이 가능하다. 차입 규모를 키우기 위해 보험지주의 자산을 키우려 했다는 논리다.
 
실제 의도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금융지주의 자본이 커지면 지배주주의 지분가치도 상승한다. 삼성은 삼성생명의 자사주 6조원과 이익잉여금 3조원 등 총 9조5000억원 정도를 보험지주에 이전할 계획이었다. 삼성생명에 대한 이건희 회장(20.76%) 지분은 인적분할 후 현물출자를 통해 보험지주에서 늘어날 수 있다. 여기에 보험지주의 자본까지 커지면 상당한 이득이다. 정치권에서 자사주 활용을 규제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익잉여금 출자전환도 같은 문제를 낳는다. 기존 지배주주의 지분가치 및 의결권이 강화되는 대신 그만큼 외부 주주의 영향력은 축소된다.
 
때문에 재벌그룹들이 유보금을 쌓아두는 목적에 의심이 더해진다. 투자 및 고용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짐에도 기업들은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에 대비한 유동성 확충을 이유로 유보금을 풀지 않고 있다. 새 정부 들어 경제민주화 기조로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대기업들은 지배구조 개편의 압박에도 놓였다. 향후 인적분할 가능성에 대비해 유보금을 축적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12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30대그룹 상장사들의 유보금은 역대 최대 수준인 700조원에 육박했다. 178개 상장사의 감사보고서(별도 기준)를 토대로 유보금을 집계한 결과, 691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최근 5년간 유보금은 176조원 불었다. 삼성은 2012년 말보다 65조원 증가한 219조5000억원, 현대차도 43조4000억원이 늘어난 121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SK는 70조6000억원으로 5년간 28조1000억원(66.2%) 늘어나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LG는 같은 기간 38조9000억원에서 48조8000억원으로 9조9000억원 늘었다. 롯데와 포스코, 한화 등의 유보금도 5년 전보다 각각 5조9000억원, 5조2000억원, 2조9000억원 증가했다.
 
삼성은 금융지주 전환 포기로 풀지 못한 보험사 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보험업법 개정안 등 금산분리 규제 강화 리스크도 상존하고 있다. 그룹 내 남아 있는 순환출자 고리를 풀어가는 과제도 만만치 않다. 현대차도 순환출자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지주회사로 전환한 SK, LG 등도 지주회사 행위제한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지분 변동이 불가피해진다. 지주 미전환 그룹인 삼성, 현대차, 한화는 모두 같은 법안의 지주비율 강화에 따른 강제 지주전환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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