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조용훈 기자]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신림선 경전철(2022년 개통)과 동북선 경전철(2024년 개통)은 개통 1년 후부터 무임승차 보전을 받는다. 우이경전철의 수익 전망이 안개 속인 것은 이 같은 보전이 개통 전 확실하게 매듭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실시협약을 맺은 시기 자체가 달랐다”며 “재협의 시점에 가서 논의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6년부터는 민간제안사업에 대한 최소수입보장제(MRG)도 폐지돼 시행사 입장에서는 손실이 나도 이렇다 할 돌파구가 없다는 것도 예정된 리스크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요금을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이신설경전철㈜ 관계자는 “대중교통 요금 규제를 받기 때문에 임의대로 가격을 책정할 수 없다”며 “당초에도 수요예측에 맞춰 요금을 책정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적정 이윤이 보장되겠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용객 현재의 2배 수준까지 증가할 것"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좀 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개통한지 한달도 안 된 현시점에서 이용객이 적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이경전철의 운명을 판단하기엔 이르다는 것이다. 시행사는 이용객이 앞으로 현재의 2배 수준까지는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행사 관계자는 “이용객 숫자가 이대로 고착화되지는 않는다”며 “홍보나 여러 가지 제반 여건이 갖춰지면 이용객은 점차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9호선 같은 경우 첫 달 이용객은 1일 예상수요였던 24만588명에 훨씬 못 미쳤지만 이후 38만4423명이 몰리면서 당초 예측수요보다 최고 37%까지 늘어났다.
오히려 9호선처럼 이용객이 몰려 혼잡도가 커지는 것도 문제다. 우이경전철은 일반 지하철에 비해 폭도 좁고, 객차도 2량으로 운행돼 1편당 최대 250여명정도만 탑승할 수 있다. 과거에는 중전철(지하철) 설계기준만 있었지만 우이경전철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토교통부가 별도의 경전철 설계기준을 마련됐다. 시행사 관계자는 “처음에는 4량으로 계획했지만 국토부 지침대로 2량으로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출퇴근 시간대 만난 승객도 다소 불편함을 토로했다. 직장인 김민아(26·여)씨는 “지금도 사람이 적은 편이라고 하지만 나중에 이용객이 몰리면 버스를 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현재 시행사측은 러시아워 시간대에는 두 개 레일을 모두 운행 중이다. 역무보조인 명락금(48)씨 역시 “출퇴근 시간에는 시민 분들이 많이 몰리다 보니 일일이 응대하기 버겁다”고 말했다. 이날 명씨는 시민들이 연이어 던지는 질문에 답변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단점만 가진 것 아니야
우이경전철이 마냥 단점만 가진 것은 아니다. 관련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서울시민의 58.2%가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지하철을 단순한 ‘탈 것’ 이상의 공간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상업광고는 승객들에게 ‘타는 즐거움’을 상당부분 앗아갔고, 이는 ‘서울에선 지하철을 타면 다들 고개 숙여 스마트폰만 본다’는 삭막한 지하철 이용문화의 이유가 됐다.
지하철 상업광고는 수 년 전만 해도 4000억원(서울교통공사 기준)에 달하는 적자를 메우고자 승객 동선 따라 법에서 가능한 곳마다 광고판을 설치하고, 수익시설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매년 수백억원의 수익을 올렸지만, 이는 승객 피로도의 대가였다. 심지어 지하철 광고는 유동인구에 비해 광고효과가 낮아 환승역이 아닌 역사의 경우 절반가량이 광고 없이 하얀 천으로 덮이기 일쑤다.
서울시는 과감하게 서울지하철 안에 있는 상업광고와 상업공간을 없애고 이 자리에 문화와 예술을 불어넣는 프로젝트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미 런던·스톡홀름·뮌헨 등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는 열차 광고판에 공연과 전시를 넣고 있으며, 역사 통로도 멋진 작품과 문화공간으로 바꾸는 추세다.
하지만 이내 장벽에 부딪혔다. 기존 역사의 경우 이미 영업 혹은 광고 중이던 업체들과의 계약관계가 걸림돌로 작용했고, 더군다나 연간 수백억원의 수익을 포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고심 끝에 서울문화재단은 우이경전철에 첫 문화철도 프로젝트를 가동키로 결정했다. 지난 2일 개통한 우이경전철은 신규시설이라 기존 업체들과 부딪힐 문제가 없는데다 새 역사 공간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안성맞춤이었다. 더욱이 우이경전철이 연결하는 강북·성북·동대문구는 서울 내에서도 미술관·박물관·영화관·공연장 등 문화시설이 부족한 문화소외지역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지하철 문화예술 새 지평
문화철도 프로젝트는 그동안 지하철에서 볼 수 있었던 버스킹 공연이나 이젤 안에 갇혀있던 사진 전시와 다르다. 훌륭한 미술작품을 보러 유명 미술관까지 가야 하는 수고로움과 비용을 덜어내고 달리는 지하철이나 지하철 역사에서 손쉽게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상업광고 대신 수준 높은 예술작품을 역사 내부로 가져온 ‘아트스테이션(Art Station)’은 총 13개 역사마다 특성에 맞게 다른 전략을 짰다. 북한산우이역은 자연, 4·19 민주묘지역은 근현대사, 정릉역은 역사·전통, 성신여대입구역은 청년 등이다. 이를 통해 환승역에 비해 유동인구가 부족한 역사라도 나름의 특성을 갖춰 사람을 끌어올 수 있는 효과가 기대된다.
현재 신설동역에서는 ‘색채의 마술사’라 불리는 천경자 화백의 원작을 본 뜬 모작 13작품을 만날 수 있으며, 성신여대입구역에선 ‘오늘의 젊은 작가상’을 받은 김영나 작가의 설치예술작품이 승강기 앞에 전시되고 있다. 북한산우이·솔샘·정릉·보문역 등은 신진 그래픽디자이너 32팀의 작품 총 150점이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옆 벽면에 전시되고 있다.
또 역사 내 숨어있는 공간을 활용하고자 성신여대입구역 승강장과 북한산우이역 2번 출구 근처에 각각 별 모양과 쉼표 모양의 왜곡형상아트 작품을 설치했다. 이들 작품은 지역 초등학생들이 참여했으며, 향후 공연장소로 활용될 수 있다.
'달리는 미술관'·달리는 도서관'
열차 내부를 상업광고 대신 문화예술로 꾸미는 ‘달리는’ 시리즈는 현재 ‘달리는 미술관’과 ‘달리는 도서관’이 운행 중이며, ‘달리는 뮤지컬’, ‘달리는 영화관’, ‘달리는 공연장’ 등도 추진 단계다. 열차 내부를 각 주제에 맞게 랩핑하는 방식으로 달리는 미술관에는 정도운 작가와 정은혜 작가가 참여해 형형색색의 작품을 열차 곳곳에 체웠다. 달리는 도서관은 서울도서관과 성북구립도서관이 참여해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만이라도 스마트폰이 아닌 책을 읽고 싶은 느낌이 들도록 세대별 올해의 책, 서울이 사랑한 시 한 소절 등의 콘텐츠를 채웠다.
지난 18일 오후 우이경전철을 타러 시청역에서 신설동역으로 향하는 1호선을 탔을 때만 해도 여전히 열차 내부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이제 생활의 모든 것이 돼 버린 스마트폰만 바라볼 뿐 역사통로에서도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정면만 무심히 바라본 채 걷기 바빴다.
그러나 신설동역에서 환승게이트를 통과해 승강장으로 향하는 통로로 들어서자 조금이나마 사람들 걷는 속도가 느려졌다. 여전히 많은 승객들은 스마트폰에 시선을 두었지만, 4~5명 가운데 1명 꼴로 벽면에 있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보고 있었다. 일부는 몇 초라도 발길을 멈춰 감상한 후 다시 발길을 재촉하기도 했다.
보문역으로 가기 위해 우이경전철에 탑승한 시민 최모(52)씨는 “일단 역사가 지저분하지 않고 덕지덕지 뭐가 많지 않아 시원하니 좋다”며 “그림은 잘 모르지만 신기하길래 잠깐 봤는데 좋은 시도 같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내려놓고 작품을 이야기하다
‘달리는’ 시리즈 중에서는 ‘달리는 미술관’이 당장 반응이 좋다. 다이나믹듀오, 슬리피 등 유명 래퍼부터 박원순 서울시장, 방송인 손석희씨 등 알만한 인물 그림이 열차 내부를 채우면서 청소년과 아이들은 아예 벽을 따라 한 명 한 명 따라가기도 한다. 좀처럼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청년들조차 그림 속 인물을 주제 삼아 서로 얘기하는 모습은 다소 낯설기까지 했다. 4·19민주묘지역에서 탑승한 김모(22)씨는 “평소 지하철을 타면 가는 동안 게임이나 인터넷으로 시간을 보내는 편이지만 우이경전철에는 볼 것이 많아 가끔 주위 작품을 구경하고 있다”며 “계속 유행에 맞춰 그림도 바꿔주면 더 재미있겠다”고 말했다.
서울문화재단 관계자는 “현재 문화철도 프로젝트의 중장기적인 운영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수립 중이며 시즌마다 광고 등에 변화를 줄 계획”이라며 “그동안 지하철 공사로 고생했을 주민들이 앞으로 더 문화철도를 즐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오후 우이신설설 신설동역에서 한 남성이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보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박용준·조용훈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