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이번 선집은 누군가를 선동하려거나 가르치려는 글이 아닙니다. 단지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이렇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소설이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달되기에 용이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함께 읽어야 할 책’이란 메시지로 전달되길 바랍니다.” (김이설 작가)
7명의 여성 작가들이 페미니즘을 주제로 쓴 ‘현남 오빠에게’(다산책방)가 출간됐다. ‘82년생 김지영’으로 올해 페미니즘 열풍을 주도한 조남주를 비롯, 최은영·김이설·최정화·손보미·구병모·김성중 등 7인 작가의 단편 소설들이 한데 묶였다.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다산북카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조남주, 김이설, 최정화 세 명의 작가가 참가해 책의 집필 의도부터 한국사회와 페미니즘 담론에 관한 자신들의 생각을 차분하고 명료하게 전했다.
우선 조남주 작가는 단편집의 표제작으로 선정된 ‘현남 오빠에게’와 관련해 말문을 열었다. 그는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작가 시절 직접 들은 가정폭력 일화와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조종당하는 심리학 용어 ‘가스라이팅’을 차용해 집필했다”고 설명했다.
“어느 정도 경제력도 있고 사회적 위치도 있었던 분인데 결혼 초부터 폭력을 겪었다고 하시더라구요. 당시 고통을 겪는 피해자를 보며 ‘왜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란 의문이 들었고 시간이 지나서도 그 질문이 제 안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현남 오빠에게’는 여성인 ‘나’가 10년 사귄 남자친구 현남에게 ‘청혼 거절’을 통보하는 편지글이다. 차분하고 예의바른 경어체에서 시작하는 편지는 오랜 기간 자신의 친구나 진로 문제 등에 개입해 온 현남의 태도가 ‘폭력’이었음을 폭로하는 형태로 나아간다. “강현남, 이 X자식아!”라며 욕으로 끝나는 소설의 말미에선 전작 ‘82년김지영’보다 더 주체적이고 단호한 화자의 의지도 엿보인다.
조남주 작가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한 것이 희망적인 것 같다”며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문제들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됐는데, 이런 생각이 있으면 이후의 진행이 있을 거라 본다”고 말했다.
또 최근 '82년생 김지영' 열풍이 불고 있는 현상과 관련해선 "남성 독자들의 리뷰를 보면서 남성들도 여성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싶었고 그럴 의지가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그 기회가 너무 부족했던 것 아닌가 생각했다. 또 소설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의 경험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소설이 하나의 기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답했다.
‘현남 오빠에게’를 제외한 나머지 소설 역시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지점에 서 있지만 표현하는 문체와 구성,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김이설 작가는 ‘경년’에서 사춘기 아들을 키우는 갱년기 엄마로서의 고백을, 최정화 작가는 ‘모든 것을 제자리에’에서 여성 율씨를 화자로 세워 ‘자기 내면의 여성혐오’ 등을 말하고 있다.
조남주 작가는 “김이설 작가님의 소설은 아들과 딸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라며 “남자 아이나 여자아이를 대하는 사회적 편견이 잘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하고 있는 고민과 너무 똑같아서 이야기에 이입하면서 읽었다”고 평했다.
최정화 작가는 “두 작가 분의 글은 현재 한국 여성들의 삶을 카메라로 담아낸 것 같은 작품이어서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했다”며 “반면 저는 그것을 이야기로 바꿔서 작품을 쓰고자 했다. 문학이 발언의 한 형태라는 생각 가지게 됐고, 그 주제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소회했다.
다만 작가들은 소설이 페미니즘을 앞세웠다고 해서 남성들과 싸우자는 의미로 읽히지 않았으면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김이설 작가는 “여성과 남성 모두가 책을 읽으며 서로의 마음을 가만히 쓰다듬는 시간이었으면 한다”며 “단순히 여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내용이 각기 다른 7인 작가의 색깔을 통해 즐거움으로 전달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오늘은 오늘 만큼의 한발짝을 딛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기획을 할 수 밖에 없는 한국사회와 흔쾌히 응할 수 밖에 없는 작가님들의 마음, 이런 마음으로 집필된 소설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현남오빠에게'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정민교 다산북스 편집자(왼쪽부터)와 김이설, 조남주, 최정화 작가. 사진/다산북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