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고비'가 찾아온다. 전통적 사이클과 중국의 신규 진입, 업계의 신·증설 등으로 하반기 업황이 둔화하는 ‘상고하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경기 회복세를 주도해온 반도체의 낙폭에 따라 전체 수출산업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다. 국내 업체들은 기술격차, IT신산업 수요의 폭발적 성장세 등으로 낙관하지만, 정부의 보호 아래 자국 수요를 빨아들이는 중국 업체들의 특수성과 공급량 증가로 가격경쟁이 촉발될 가능성마저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 경고다.
수요는 클라우드 타고 ‘두둥실’
반도체는 지난해 수출 전선을 이끈 주역이다. 올해도 호황이 지속될 것이란 게 다수 분석기관들이 내놓은 전망이다. 그러나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큰 만큼, 반도체가 휘청일 경우 경기가 급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공급 과점 구도와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흐름을 믿는다.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알리바바 등 클라우드 업체들은 4차 산업혁명의 IT신산업 수요에 대응하고자 데이터센터를 공격적으로 늘리는 중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센터는 메모리반도체의 ‘금밭’이다. 이들 증설분은 2019년까지 일정이 빠듯하다. 클라우드 기반의 인공지능 서비스 등 전에 없던 수요 창출도 기대된다. 최근 가상화폐 시장에서 채굴기제품용 메모리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고객사들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공급사들이 50%가 넘는 마진을 유지하는 상황에서도 가격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있다.
반도체 사이클의 숙명
하지만 반도체가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이라는 데서 불안이 엄습한다. 과거 반도체 호황기는 2006년~2007년, 2009~2010년으로 2년 정도 지속됐다.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본격 반등한 시기는 2016년 하반기부터였다. 사이클상 올 상반기가 남은 수명이다. 업계 역시 적어도 1분기까지는 업황이 좋을 것으로 확신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난야 등이 모두 가격 상승세를 예측했다.
하지만 상반기를 끝으로 공급증가 요인이 몰려 있어 ‘상고하저’가 유력시된다. 중국의 첫 메모리 산업 진출이 가장 큰 위협이다. 3일(현지시간)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중국 칭화유니그룹 산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컴퍼니(YMTC)가 올 하반기 우한공장을 가동, 32단 3D낸드플래시 초기 양산에 들어간다. 동시에 업계와의 격차를 줄이고자 64단 제품 개발에도 전력할 방침이다. D램익스체인지는 "YMTC를 비롯해 다수 업체들의 신증설 물량으로 2019년 공급과잉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기술격차로 넘기 힘든 만리장성
삼성전자가 이미 64단 제품을 주력 양산하는 등 업계가 믿는 것은 오로지 기술 격차다. 32단에 진입하더라도 48단부터는 기술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간다는 지적이다. 중국이 설사 동일한 적층수를 개발해도 품질은 비교불가라는 자신감도 단단하다. 업계는 중국보다 수년 이상 기술력이 앞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떨치기 어려운 우려는 중국만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전기차배터리의 경우 삼성SDI, LG화학의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가 중국 내 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판로가 막힌 양사의 중국 매출은 현재 제로다. 마찬가지로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는 중국 정부가 현지 업체에 자국산 제품만 사용토록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반도체 가격에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파트너십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무너지는 과점시장 안정구도
후발주자의 진입은 단순히 공급이 늘어나는 것 이상의 파장이 있다. 기존 공급자 중심의 안정적 수혜가 무너질 공산이 크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기존 강자들은 물량공세를 예고했다. 삼성은 중국 시안공장을 내년까지 증설한다. SK하이닉스도 내년 가동 목표로 충북 청주공장(M15)을 짓고 있다. 인텔은 올해 말까지 중국 다롄공장을 증설한다. 매각 작업과 웨스턴디지털과의 분쟁을 해소한 도시바도 일본 내 신공장 계획을 내놨다. 증설 계획이 몰린 데는 수요 대응 측면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견제로 해석한다.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후발주자가 진입하기 전 마진을 끌어올려 자금을 축적했다가 진입과 동시에 저마진으로 경쟁사를 밀어내는 전략이 과거에도 있었다”며 “수요가 늘더라도 일단 공급사가 늘어나면 시장에서 배제하기 위한 가격경쟁이 펼쳐진다”고 말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