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지난 2008년 BBK 의혹과 관련한 자금흐름과 계좌내역 등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정황을 파악하고도 이를 수사 결과에 포함하지 않은 혐의로 고발된 정호영 전 특별검사가 14일 "특검이 마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나 이상은, 김재정의 비자금을 발견하고도 이를 덮은 것처럼 호도되고 있는데, 이는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전 특검은 이날 오후 3시 기자회견을 열고 "특검은 2번의 압수수색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는데도 경주에 있는 ㈜다스에 찾아가 설득을 통해 영장에 의한 것과 같은 비중의 압수수색을 진행해 자료를 확보했고, 계좌추적과 통화내역조회 등을 진행했고, 소환 불응자를 끝까지 소환해 신문했다"며 "특검에서 비자금을 발견하고도 덮으려고 했으면 그 수사 내용을 폐기하고 검찰에 기록을 인계하지 어떻게 수사한 내용을 그대로, 또 그 내용을 기록한 목록까지 작성해 인계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검찰에서 밝히지 못한 사실을 특검에서 밝혔는데도 오히려 부실수사를 해 특검수사를 초래하고, 특검으로부터 특검기록을 인계받은 후 후속수사 등 그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당시 검찰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특검수사를 비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특검이 검찰로부터 인계받은 기록을 검토해 보니 검찰은 다스에 대해 두 번이나 수사했음에도 아무것도 찾아낸 것이 없었다"며 "그러나 특검은 계좌추적을 통해 다스에 120억원의 부외자금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또 "특검은 이 부외자금이 다스의 비자금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금 조성자인 경리 직원과 관련자를 모두 조사했지만, 이 직원의 단독 범행이란 것 외에 전무와 김성우 사장이 공범인지는 밝히지 못했다"며 "특검의 수사 대상이 되려면 전무나 김성우 사장이 횡령에 관련되고, 나아가 이 사람들이 이상은 회장이나 김재정까지 연결돼야 하고, 또 이 전 대통령 사이에 자금흐름이나 횡령에 대한 공모관계가 수사를 통해 입증돼야 하는데, 특검수사를 마무리할 당시까지 자금 흐름을 입증할 자료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정 전 특검은 "검찰은 특검에서 기록을 인계받은 후 기록을 전혀 보지 않았다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서 수사하던 사건을 특검이 넘겨받아 40일이란 짧은 기간 수사하고 검찰에 다시 돌려준 사건"이라며 "그렇다면 원래의 사건 담당 검사는 특검에서 추가로 수사한 내용에 대해 수사기록을 검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업무"라고 말했다. 이어 "특검기록이 인계된 후 검찰에서의 보존 처리된 과정과 시기, 혹은 보존처리 이후에 기록의 대출이 있었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특검의 발표에 대해 전직 검찰총장은 기록을 인수인계받지 않았다고 하다가 특검에서 다시 인수인계 절차를 거쳐서 인계했다고 발표하자 서류뭉치를 받았다고 했다"며 "저는 전직 검찰총장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는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특검이 수사 결과를 언론의 생중계를 통해 전 국민 앞에서 발표하고 특검법에 따라 수사기록에 목록을 붙여 인수인계 절차를 거쳐 인계했는데도 서류뭉치를 받아 창고에 넣었다는 것인데, 이를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또 전직 검찰총장은 정식으로 수사의뢰가 되거나 사건으로 이첩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며 "특검은 수사 기간과 수사 대상이 한정되어 있으나, 검찰은 일반 사건에 대한 포괄적 인지수사권한을 가지고 있고, 수사 기간에도 제한이 없다. 검찰은 특검이 하나하나 알려주지 않으면 어떤 것을 입건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지도 못한다는 것인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찰은 특검에서 넘겨받은 사건에 대해 검토 후 다스 직원의 개인 횡령에 대해 입건하여 수사할 것인지를 판단해 일을 해야 했을 것"이라며 "이것을 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검찰의 직무유기"라고 강조했다.
정 전 특검은 이 같은 해명과 함께 자신이 고발된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 전 특검은 "저희 특검팀은 당시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수사하고 진지한 토론을 거쳐 결론을 냈다"며 "이러한 내용을 10년 가까이 지난 후에 일부 언론이 의혹을 제기했다고 해 특검을 고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특검 제도 자체의 존립에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중대한 사태라고 할 것"이라며 "저는 이 점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준비된 발표문을 낭독한 정 전 특검은 별도의 질의응답 없이 기자회견 장소를 떠났다. 다만 정 전 특검의 퇴장 이후 김학근 전 특별검사보는 당시 다스 경리 직원의 120억원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에 "특정해서 보내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김 전 특검보는 이에 대한 이유로 "특검법 규정에 따라 처리한 것"이라면서 "인수인계서만 작성했다"고만 설명했다.
앞서 참여연대는 지난달 7일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는 이상은 다스 대표이사와 성명 불상의 다스의 실소유주를 특정경제범죄법(횡령)·범죄수익은닉규제법·특정범죄가중법(조세) 위반 등 혐의로, BBK 의혹을 수사했던 정 전 특검을 특정범죄가중법(특수직무유기) 위반 혐의로 수사해 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참여연대는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다스가 주로 외국에서 수입하는 원자재 가격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고, 국세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개인당 10억원 이하로 나눠 총 17명 명의의 43개의 계좌로 관리했다"며 "비자금이 50억원 이상에 달하므로 특정경제범죄법(횡령) 위반에, 업무상 횡령으로 생긴 재산은 범죄 수익임이 명백하므로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에, 해외외상매출금을 통해 은닉함으로써 법인세·소득세 등 부과 징수를 어렵게 만들었으므로 특정범죄가중법(조세) 위반에 해당한다"고 해명했다.
정 전 특검의 혐의에 대해서는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 혐의의 진상 규명을 위해 임명된 특검이 광범위한 계좌추적을 통해 비자금 조성 정황을 발견하고도 이를 수사하거나 수사 기간 만료일로부터 3일 이내에 이를 관할 지검 검사장에게 인계하지 않았다면 특수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은 서울동부지검은 지난달 26일 다스 횡령 의혹 관련 고발 사건 수사팀(팀장 문찬석 차장)을 발족하고, 참여연대가 고발한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같은 달 28일 참여연대 관계자를 고발인으로, 채동영 전 다스 경리팀장을 참고인으로 조사했으며, 그달 30일 다스에서 운전기사로 인한 김종백씨를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이후 검찰은 이달 11일 경북 경주시 다스 본사와 다스 서울지사가 있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영포빌딩을 압수수색했다.
이와는 별개로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신봉수)는 다스 관련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재수 전 LA 총영사에 대한 고발 사건을 수사 중이다. 장모 옵셔널캐피탈 대표이사는 지난해 10월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의 압박으로 옵셔널캐피탈이 전 BBK 투자자문 대표 김경준씨에게 받아야 할 140억원이 다스로 넘어갔다"며 이 전 대통령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최근 김성우 전 다스 사장과 권승호 전 전무를 불러 조사했다.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의 120억 원 횡령 정황을 파악하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된 정호영 전 BBK 특별검사가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상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