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결심공판에 출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운명의 날이 다가오면서 삼성의 긴장감도 다시 고조되고 있다. 경영 공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가 삼성 임직원들에겐 가장 큰 불확실성이다.
“하만을 인수하지 않았으면 손 놓고 당했어야 했다.” CES를 다녀온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2일(현지시간) 폐막한 CES 2018에서 디지털 콕핏을 내놨다. 하만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국내 M&A 역사를 새로 쓴 투자 건이 자율주행 홍수 속에서 삼성전자를 구했다. 안도는 근심으로 이어진다.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IT 변화는 가파른 파고와도 같다. 투자는 하만 이후 멈춰있다. 이는 결국 이재용 부회장의 공백으로 연결된다. 내달 5일 2심 선고에 삼성이 사활을 거는 이유다.
특검은 재판 과정에서 3400여개에 이르는 포괄적 뇌물 증거를 제시했다. 삼성은 ‘스모킹건’이 없다며 팽팽한 대치를 이어갔다. 무엇보다 피해자 입장에 선 다른 재벌 회장들과 달리 이 부회장만 뇌물죄 혐의를 적용받는다며 형평성에 이견을 제시했다.
특검은 지난달 27일 결심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이 법정은 재벌의 위법한 경영권 승계에 경종을 울리고 재벌 총수와 정치권력 간의 검은 거래를 뇌물죄로 단죄하기 위한 자리”라고 규정했다. 삼성측 변호인은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도 전에 사건의 성격을 먼저 규정하고, 단편적인 정황들을 모으고 모자란 부분은 선입견에 근거한 추측으로 채워 넣었다”며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결론지었지만 뒷받침할 만한 근거도 없다”고 맞섰다. 이 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아버지처럼 셋째 아들도 아니고 외아들이다. 다른 기업과 달리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지도 않았다. 자신도 있었다. 이런 제가 왜 뇌물을 주고 청탁을 하겠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1심 충격이 여전한 삼성 임직원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한 관계자는 “법원이 사회 분위기에 휘둘리지 말고 그저 법에 따라 판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정증거주의와 무죄추청의 원칙을 거론하며 “재벌이라고 이중 잣대를 적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올해 위기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다. 지배구조 현안에 결단을 내릴 총수가 공백인 상황에서 정부의 압박은 한층 강경해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하반기 순환출자, 금산분리 입법 추진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삼성에 대해서는 “핵심은 삼성생명”이라며 금산분리 문제를 거론했다.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끈 반도체는 고점 논란에 휘말렸다. 시장 분석기관들이 하나둘 공급과잉 전망을 내놨다. 하반기엔 중국 굴기가 도사린다. 삼성전자에 이어 삼성물산도 파격적인 배당정책을 꺼냈다. 배당 외에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의미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