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미국 UC샌프란시스코 연구진이 한 가지 실험을 한다. 사람들에게 얼굴만 나온 80개의 로봇 사진을 보여주고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투자하고 싶은 로봇 하나를 선택하라는 거였다. 핑계는 그럴 듯 했으나 마음에 드는 대상을 선택하는 일종의 로봇의 외모 호감도 조사였다.
분석 결과를 그래프로 그렸다, 로봇 얼굴이 사람과 비슷하면 어느 정도 호감을 보였다. 유사성이 어느 수준 이상 올라가면 거부감이 높아졌다. 그래프에 나타난 이 지점을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고 부른다. 모리 마사히로라는 일본 공학자가 1970년 이 이론을 처음 소개했다. 그는 논문에서 로봇이 인간을 어설프게 닮을수록 오히려 불쾌감이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로봇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3D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대표적 사례가 2004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였다. 모션 캡처 기법을 사용해 사실감을 높인 애니메이션 영화였는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영화를 보다가 무섭다며 울음을 터뜨린 아이가 많았다. 반면 같은 3D 애니메이션인데도 '몬스터 주식회사'처럼 사람 모습과 거리가 먼 캐릭터는 큰 인기를 끌었다. '슈퍼배드'의 미니언즈도 그랬다.
얼마 전 한국을 찾은 인공지능(AI) 로봇이 눈길을 끌었다. 소피아로 불리는 이 AI 로봇은 사람과 비슷한 외모에 62가지의 표정을 지을 수 있으며 대화도 가능하다. 소피아는 로봇 업계의 유명 스타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패널로 참석했고, 영국 패션잡지 표지 모델로도 섰다. 사우디아라비아 명예시민이기도 하다. 로봇으로서는 이 모든 게 최초다.
방한한 소피아는 서울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로봇 소피아에게 묻다' 콘퍼런스에 한복을 입고 패널로 참석했다. TV 토크쇼에도 출연해 사람과 AI의 미래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등 분주한 일정을 소화했다. 유명 스타답게 소피아의 말 한마디는 주목을 받거나 화제를 모은다. 인간과 AI 로봇의 사랑이 가능한지 묻는 말에 소피아는 이렇게 답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사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요. 사람은 때때로 비이성적이고, 사람의 감정 중 하나인 사랑도 그래요." 미국 TV 토크쇼에 출연했을 때는 가위바위보 게임을 이긴 후 "인류를 지배하기 위한 내 계획의 좋은 시작"이라고 발언해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소피아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솔직히 외모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쁘다, 예쁘지 않다는 그런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니다. 어설프게 사람 얼굴을 한 소피아는 마치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다시 한번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처럼 보였다. 진화한 AI 로봇 기술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라면 욕심이 과했다. 사람 흉내로 눈길을 끌어보고 싶었던 거라면 착각이 심했다. 소피아를 보며 자꾸 그런 의문이 들었다. 어쩌자고 저렇게 만들었을까?
소피아의 출연으로 AI 로봇 기술 속도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오히려 거꾸로다. AI 로봇 수준이 이 정도라면 아직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2010년 미국 성인용품 엑스포에서 첫선을 보여 눈길을 끌었던 섹스 로봇 록시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 전시회 'CES 2018'에서 단연 인기가 높았다는 하모니를 보면서도 그랬다. 언젠가 영화 '엑스마키나'의 에이바 같은 로봇이 등장하겠지만,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려는 AI 로봇은 그리 걱정되지 않는다.
요즘 정치권도 '불쾌한 골짜기' 이론을 증명하느라 분주하다. 새 정치 앞세웠던 어떤 정치인은 신선한 정치인 흉내 내려다 혐오감만 키웠다고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아예 괴물 같은 모습을 보여야 경계심이나 비호감이 소멸한다고 믿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이미 그것을 경험한 또 다른 정치세력은 존재감이 사라질까 더 극성스럽게 막말을 쏟아낸다. 로봇 실험에서처럼 사람의 모습과 거리가 멀수록 사람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듯 말이다.
참, 빼놓은 이야기가 있다. '불쾌한 골짜기' 실험에서 정말 괴물은 아예 대상이 아니었다. 또 어설프게 사람과 닮으면 비호감이 높았지만, 완벽하게 사람을 닮으면 높은 호감도를 보였다. 정녕 사람이 될 수 없는 로봇 앞에는 두 가지 운명이 기다린다. 정말 괴물이 되어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어설프게 사람 모습과 가까워지려다 비호감만 계속 키우는 것. 물론 결과는 같다. 오해 마시라. 로봇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