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금융부 기자
3년 전 허리 통증으로 진료를 받고 실손의료보험 보험금을 청구했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보험금 지급은 보름이나 미뤄졌다. 어깨가 뻐근할 때면 한의원에 종종 갔었는데, 이를 두고 손해사정 담당자는 경추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전까지 경추 문제로 질병 진단을 확정받은 적이 없고 보험금을 청구한 일도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사정 담당자는 막무가내였다. 그리고는 경추부 부담보(담보제외) 동의서를 내밀었다. 부담보에 동의하지 않으면 보험 가입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부담보는 실손보험뿐 아니라 함께 가입한 종합건강보험에도 적용됐다.
지금 돌아봐도 썩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다. 아마도 그때 무담보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분쟁조정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조정이 원만히 이뤄지지 않았다면 소송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험 가입하기 전엔 소비자가 갑일지 몰라도, 보험에 가입한 후 보험금을 청구할 때가 되면 보험사가 갑이 된다.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미루면서, 혹은 이미 지급한 보험금 반환을 요구하면서 보담보 동의나 계약해지를 강요하면 소비자로선 선택지가 많지 않다. 보험사의 요구를 거부하면 보험금을 못 받거나 받은 보험금을 토해내야 하고, 그것도 싫다면 분쟁조정이나 소송을 감당해야 한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보험사의 승소율은 큰 의미가 없다. 결과까지 볼 것도 없이 보통은 소비자가 먼저 지쳐 포기해버린다.
특히 소비자를 압박하기 위한 막무가내식 소송은 세월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에 따르면, 작년 분쟁조정 건수가 100건 이상인 14개 보험사의 총 분쟁조정 건수는 2만557건으로 1년 전보다 3020건(17.6%) 늘었다. 그나마 보험사가 소송을 제기한 건수는 2016년 246건에서 작년 193건으로 줄었지만 MG손해보험과 한화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에서는 오히려 증가했다. MG손보의 경우 분쟁조정 중 소송 제기로 이어진 비율이 7.9%나 됐다.
보험금 지급은 보험료를 납부한 소비자에게 보험사가 한 약속이다. 보험 가입 과정에서 소비자가 병력 등을 고지하지 않았거나 보험금이 부당하게 지급됐다면 몰라도, 손해율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소비자를 압박하는 행태는 결국 보험사에 대한 신뢰만 깎아먹을 것이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