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재벌 금융사 스스로 성찰해보라

입력 : 2018-02-14 오전 6:00:00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31일 보험 증권·카드 등 금융회사들을 그룹별로 묶어 통합 감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는 삼성, 한화, 현대차, 롯데 등 제조업을 거느린 5개 재벌이 포함돼 있다. 이들 재벌금융사는 전업금융사 못지않게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은 366조원의 자산을 갖고 있고, 한화의 금융자산도 126조원을 헤아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그 다음날 지주회사로 전환된 후에도 여전히 금산분리 원칙을 어기고 있는 SK에 SK증권 주식을 1년 안에 모두 매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과징금 29억여원도 부과됐다. 기한 내에 이행하지 않으면 검찰에 고발될지도 모른다.
 
지난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금융위원회가 나쁜 짓을 더 많이 했다”고 비판했다. 과거 재벌이 금융계열사를 통해 탈법 또는 편법경영을 자행할 때 금융당국이 수수방관 또는 방조한 정황을 봐왔기에 그렇게 격한 발언이 나왔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파문이 일자 곧바로 발언을 거둬들였지만, 결코 무리한 비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금위와 공정위가 하루 사이에 연이어 재벌금융사들을 압박하고 나섰으니 보기 드문 장면이다. 아마도 금융사를 보유중인 재벌들은 앞으로 일찍이 겪지 못한 부담을 느끼게 될 듯하다. 금융위가 앞으로 마련할 통합감독 기준 여하에 따라 계열사끼리의 내부거래가 어려워짐은 물론이고, 지분을 매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재벌 금융사에 관한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말 재벌계열 종합금융사들이 부실화되면서 그룹경영은 물론이고 국가경제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일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2003년 신용카드 부실화 문제가 터졌을 때에는 LG카드와 삼성카드가 그룹경영에 주름살을 안겨줬다. 결국 LG그룹은 LG카드를 포기하면서 금융산업에서 완전히 퇴각한 반면 삼성은 삼성생명 자금을 삼성카드에 투입했다. 최근에는 현대라이프생명이 적자 늪에 빠지면서 유상증자의 형식을 빌어 현대모비스의 자금을 끌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현대차의 부진으로 실적이 악화된 현대모비스에 또 다른 부담을 안겨준 것이다.
 
계열 금융사들이 재벌의 편법경영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다. 이를테면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 경영권을 장악하게 된 핵심적인 동력이 삼성생명 지분이다. 이 회장은 오래 전부터 차명대주주로 삼성생명을 지배해 왔다. 2008년 삼성특검을 거치면서 실명 전환해 명실상부한 최대주주가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생명 지배권을 확보하고, 나아가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모든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적은 지분으로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차지하고 넘겨주는 과정에서 많은 무리가 따랐다. 2008년의 삼성특검이나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등은 모두 그러한 무리가 낳은 ‘불상사’였던 것이다. 게다가 삼성생명은 현재 8% 가량의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만성적인 금산분리 위반자다.
 
삼성증권은 이 회장의 차명계좌 은닉처나 다름없었다. 2008년 삼성특검 당시 드러난 차명계좌 1199개 가운데 증권계좌가 957개였고, 이 가운데 80% 가량이 삼성증권에 개설돼 있었다. 이 회장의 계좌에 들어 있던 자금이 대부분 ‘조용히’ 인출됐다는 사실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이렇듯 재벌 금융사들은 경영권을 장악하고 편법상속의 통로로 애용돼왔다. 재벌 금융사들이 모두 악역만 해온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경우 왜 굳이 거느리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과거처럼 고객이 맡긴 돈을 함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시대도 지났다. 이들 금융사에 재벌의 경영기법이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반대로 이들 금융사나 전체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 재벌이 뚜렷하게 기여한 것도 별로 없다. 매각대상이 된 SK증권을 비롯해 현대중공업그룹 소속이었던 하이투자증권, 그리고 현대차그룹의 현대차증권이나 현대라이프생명 등이 금융 산업 발전에 어떠한 유익한 역할을 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그룹의 자원을 분산시키는 역효과가 더 커 보인다. 이렇듯 이제 재벌에게 금융사는 의미도 불분명하고 실익도 없는 것 같다.
 
고대그리스의 어느 현인은 “언제나 목적을 생각하라”고 일렀다. 재벌이 금융사를 거느리고 있는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금융계열사를 두고 있는 재벌들에게 이제 진지하게 성찰할 때가 온 듯하다. 과연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와 필요성이 있는지.
 
차기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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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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