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작년 하반기부터 소문으로 돌던 한국GM의 철수가 현실화되었다. 설 연휴를 코앞에 둔 13일 GM은 군산공장 폐쇄를 선언하였다. 군산공장을 5월 말까지 폐쇄하고, 나머지 3개 공장의 운영 계획도 정부, 노조와 협상한 뒤 최종 방침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한국정부의 재정 지원이 없다면 한국 철수가 불가피함을 공론화한 것이다.
어찌 보면 GM의 한국공장 철수는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할 때부터 시민사회와 노동계는 '먹튀' 전력이 있는 GM의 인수를 반대하였다. 정부도 먹튀 위험성을 인지하여 2002년 GM에 대우차 지분을 매각하면서 "GM은 15년간 한국GM 총자산의 20% 초과분을 팔지 않도록 약속한다"는 자산 처분 견제 조항을 넣었다. 이 효력이 작년 10월 16일 끝나, GM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상황이다.
GM의 공장 폐쇄 및 한국 철수는 글로벌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한국정부가 재정 지원을 한다고 해서 쉽게 해결될 사안은 아니다. 2014년 1월 취임한 메리 바라 GM회장의 경영철학의 1순위는 수익성이다. 2020년까지 각 시장에서 EBIT(이자 및 세전이익) 기준 영업이익률 10%를 달성하겠다는 경영 목표를 제시하였다.
GM은 2014년 하반기 'GM 2025 플랫폼 계획'을 발표하면서 26개의 글로벌 생산 플랫폼을 4개로 단순화해 수십억 달러를 절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유럽사업 철수, 호주와 인도네시아 공장 철수, 태국과 러시아 생산 중단 및 축소, 계열사 매각, 인도 내수 시장 철수 등 적자 사업장에 대해서는 발 빠르게 철수했다.
GM의 공장 폐쇄 및 철수 압박은 다국적기업의 전형적인 레짐쇼핑(regime shopping)이다. 다국적기업들은 생산거점을 생산비용이 적게 드는 국가로 이동하는 방식을 통해 각국의 노동관련 보호규제의 완화와 저임금을 관철해 나간다.
다국적기업 GM의 공장철수 압박과 이익 챙기기는 유명하다. 2008년에는 GM이 인수·운영하고 있던 스웨덴 사브 자동차공장이 재무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스웨덴정부에 공적자금을 요청했다. 정부가 거부하자 보란 듯이 철수하였다. GM은 2014년 호주정부의 지원이 중단되자 GM홀덴 공장을 폐쇄하고 철수한 바 있다. 2016년에는 캐나다 오샤와 공장을 폐쇄하면서 정부와 지자체에 지원금을 요구하였다.
상황이 이럴진대 보수언론들은 GM의 철수 원인을 '낮은 생산성과 고임금'으로 단순화한다. 한국GM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누적 적자가 3조원에 이르지만,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2013년 7300만원에서 2016년 8700만원으로 올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국적기업의 횡포와 무책임성에는 비판의 칼날이 무뎌진다. 회사 측의 보도 자료를 신문기사로 그대로 전달한다. 노동조합과 정부가 양보하지 않으면 30만 노동자들이 실직한다고 협박한다.
GM의 군산공장 폐쇄와 철수 압박은 말 그대로 꽃놀이패다. 2002년 대우차 인수이후 지난 15년 동안 GM은 온갖 명목으로 본사로 돈을 뜯어가 한국GM을 부실기업으로 만들었다. 한국GM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GM 본사는 한국GM에 막대한 R&D 비용을 부과하였다. 한국GM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GM에 지급한 연구개발비는 총 1조8580억원이다. 해당 3년간 누적 손실(1조9718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GM은 2013년 유럽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할 때도 한국GM이 브랜드 철수 비용 2916억원을 내게 했고, 매년 글로벌 구매·물류·회계 시스템을 제공하는 대가로 수백억원을 걷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GM본사는 스스로 만든 경영 적자의 해결 방안 제시는 고사하고 모든 책임을 한국GM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맞서 자동차산업과 노동자의 고용 유지를 위한 치밀한 전략과 대응이 요구된다. 최악의 경우 GM의 완전 철수를 대비한 매각 및 국유화 등 자동차공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준비해야 한다. 정부와 산은의 책임이 어느 때보다 크다. 한국GM의 경영 실사와 경영투명성 확보, 책임성 있는 투자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이 담보되지 않는 현금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노동조합도 정부와 힘을 모아야 한다. 노동자의 고용을 담보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그 해법이다. 1993년 서유럽 자동차시장이 불황의 늪에 빠지자 폭스바겐 노사는 정리해고를 피하는 대신 주당 노동시간을 35시간에서 28.3시간으로 줄였다.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을 감수하고 고용을 보장받았다. 세계화가 가져온 무한경쟁은 '바닥으로의 질주(The Race to the bottom)'가 될 위험성이 크다.
다국적기업은 언제든 이윤 확보를 위해 노동자의 목숨을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다. 고삐 풀린 세계화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부와 시민사회의 대응이 절실한 때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