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기업 간 담합을 적발하기 위한 유인책인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 제도가 불공정 논란에 휩싸이면서 도마에 올랐다. 최근 '갑'의 위치에 있는 담합 주도자는 리니언시 제도를 이용해 처벌을 면한 반면, '을'의 위치에 있는 영세업체들만 막대한 과징금 처분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리니언시란 게임이론에 나오는 죄수의 딜레마를 이용한 제도다. 2명의 용의자가 모두 범죄 사실을 털어놓지 않으면 무죄를 받을 수 있지만, 상대보다 불리한 형량을 받지 않으려고 스스로 범행 사실을 털어놓으려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리니언시 제도는 담합 사실을 신고하면 혜택을 제공한다. 1순위 신고자에는 과징금 전액과 검찰 고발을, 2순위 신고자에는 과징금 50%와 검찰 고발을 각각 면제해 준다.
공정거래법 제22조에 근거한 이 제도는 지난 1980년 12월 공정거래법 제정 당시에는 없었다. 하지만 7차 개정이 이뤄진 1996년 12월 '신고자에 대한 면책' 조항이 신설되면서 법적 근거가 만들어졌고, 이후 10년 간의 손질을 거쳐 완전 면책까지 이르렀다.
리니언시는 담합 적발에 매우 효과적이다. 담합은 은밀하게 이뤄진다는 특성 때문에 '배신자'가 나오지 않으면 사건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때문에 내부고발을 유도해 담합을 효과적으로 잡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2016년까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된 담합사건 45건 중 27건(60%)이 리니언시를 통해 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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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판도 적지 않다. 우선 이유가 어떻든 위법 행위 처벌을 면제한다는 점에서 '정의에 반하는' 제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또 리니언시를 이용한 담합 사건 적발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담합에 가담한 사업자가 과징금에 대한 부담을 줄이거나 과징금을 면제받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있다. 이같은 지적은 2012년부터 2016년 6월까지 리니언시로 기업들이 감면받은 과징금 규모가 무려 8709억원에 달한다는 근거가 뒷받침해준다. 자진신고 자체가 그릇된 행위에 대한 반성이라기 보다는 처벌을 모면하려는 '악어의 눈물'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담합 기업이 갑을 관계에 있을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시장 지배적인 '갑'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이 담합을 주도하다 자진신고하면 '을'인 영세업체만 죗값을 고스란히 치르기 때문이다. 영세업체의 경우 담합 요구 자체를 거부하기 어렵고, 담합 후에는 보복 걱정 때문에 자진신고를 할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최근 마스크 담합을 벌인 유한킴벌리가 리니언시 제도로 본사는 면죄부를 받고 대리점에 처벌을 떠넘긴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리니언시 제도를 악용, 처벌을 면하기 위해 자진신고가 무분별하게 남발될 뿐만 아니라 자진신고 자체를 담합하는 경우도 생겨나는 추세다. 때문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현재까지 리니언시 제도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마땅한 묘수는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리니언시 제도는 10여년 이상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문제"라면서도 "정부와 국회 등의 차원에서 고민이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