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는 스스로를 ‘독서 문외한’이었다고 소개한다. 10년 전 그가 읽은 책이라곤 학창시절 교과서와 지정 도서 몇 권 정도가 전부. 독서의 중요성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정작 그 필요성을 몸소 깨닫지는 못했다. 어떻게 책을 고를지,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었다.
그랬던 그가 신간 ‘책 잘 읽는 방법’에서 ‘유한계급론’에 담긴 과시 소비를 오늘날 사회 현상에 비춰 논한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데이비드 브룩스의 ‘인간의 품격’과 엮어 말한다.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은 ‘논어’, ‘한비자’와 함께 읽어봐도 좋다고 추천한다. 지난 몇 년 새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갑작스레 독서에 관한 득도(?)라도 하게 된 걸까.
김 대표가 본격적으로 책을 집어 든 계기는 단순했다. ‘잘된 사람들’은 대체로 다독가라는 공통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나도 책을 읽어보자’ 결심했던 게 2008년. 정확히 10년 전이다. 전공분야였던 디자인 서적을 파다가 마케팅과 심리학 서적으로 넘어갔다. 그리고는 ‘책 읽는 방법’을 설명한 책들로 관심이 옮겨갔다. 나름의 노하우를 쌓으며 축적된 독서법으로 그는 ‘생각의 근육’을 키울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세상엔 한 사람 만의 독창적인 생각으로 써진 책은 없다. 전 인류의 여러 사상을 융합한 작가가 쓰는 것이다. 고로 세계의 모든 책은 ‘연결’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김 대표가 한번에 3~5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문학 책을 읽다 철학 책으로, 디자인 책을 읽다 경영서로 넘어간다. 그는 “여러 책을 함께 읽을 때 뇌에서 관련 지식이 증폭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며 “여러 관점을 접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만의 새로운 생각도 탄생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독서를 운동에 비유하길 서슴지 않는다. 헬스장에서 꾸준히 운동해야 근육이 생기는 것처럼, 책도 계속 읽어야 ‘사고 근육’이 자란다는 얘기다. 성취감을 우선순위에 두고 일주일에 한 권씩 완독하는 훈련부터 하면 좋다.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논어의 말’처럼 얇은 책들로 시작하고, 6개월에 한번 정도는 소크라테스의 ‘국가’,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 두꺼운 책들에 도전할 것을 권한다. 내용이 두껍고 어렵다면 청소년들이 보는 만화책이나 책을 해설하는 영상을 곁들여 따라가도 된다.
장기적으로 저자는 ‘도끼 같은 책’을 만나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도끼’란 카프카가 “책은 우리 안에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한 것에서 차용했다. 기존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관점을 주는 책들이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을 보며 본질이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톨스토이의 소설로 삶과 죽음, 행복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이런 책들이 결국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생각으로 ‘책 지도’도 만든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각자 자신만의 서재를 통해 책 지도를 만들어보라는 거에요. 저 책의 저자는 누구의 영향을 받았고, 반대 주장을 하는 인물은 누구고, 이 이야기는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중략)”
어떤 책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바로 보게도 해준다. 저자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보고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루돌프 폰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읽으며 오늘날 ‘미투운동’의 심연을 살폈다. 무거운 주제를 논하는 이 같은 책들은 읽다가 막힐 때도 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말고 ‘거름망’처럼 흘려 보내라 조언한다. 지나치듯 읽더라도 그것이 2~3년 축적되면 지식이 되고 지혜가 되는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글자 하나, 하나에 얽매이느라 독서 시간이 소요된다면, 저자가 제안하는 속독법을 유심히 봐도 좋다. 그는 책을 양쪽 페이지가 모두 보이도록 간격을 조정하고 두 세줄 씩 대각선으로 읽는다. 이때 형용사와 부사는 건너 뛰고 명사와 동사만 끄집어 내 전체적인 맥락 파악에 주력한다. 목차와 머리말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거나 글자에 얽매이지 말고 생각에 집중하라는 팁도 전한다. 처음부터 읽어야만 하는 소설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적용 가능한 방법들이다.
무엇보다 책의 가장 큰 묘미는 부록에 있다. 자신에게 도끼 같았던 책 31권을 소개하고 이유를 차근 차근 짚어주기 때문이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같은 작품들을 ‘사고 근육’이 커진 경험에 기반해 설명한다.
'도끼 같다'고 소개하는 책의 결들만 따라가도 독서폭을 넓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간 너무 편향된 독서법에 치우쳐 있지 않았나, 고민도 하게 된다. 저자의 말대로 책에서 매번 자신의 주장이 맞았음을 입증만 하고 그친다면 그것은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다.
'책 잘 읽는 방법'. 사진/북스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