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전통 깨는 프랑스 정치

입력 : 2018-04-03 오전 6:00:00
선거철마다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 있다. 각 당의 인재영입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마찬가지다. 각 당은 누구를 영입해야 한 석이라도 더 얻을 수 있을지를 놓고 혈안이 되어있다.
 
한국당은 지난 달 언론인 출신 길환영 전 한국방송(KBS) 사장과 배현진 전 문화방송(MBC) 아나운서 등을 영입했다. 바른미래당의 경우 자유한국당 또는 다른 곳에 몸담고 있던 인사들을 인재로 영입했다. 그러나 이들을 인재라고 명명해도 될까. 원래 몸담고 있던 조직과 척을 지어 배제된 사람 등을 인재로 영입하는 한국의 정치행태는 연인원 1500만 명이 참석한 촛불시위로도 청산되지 않는 고질병인 것 같다.
 
프랑스는 지난 대선에서 국회의원을 한 명도 보유하지 못한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 후 정치권은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서로 간의 이권 다툼에 혈안이 되어 있던 기존 정당들은 위기의식을 느껴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쇄신을 모색해야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정치의 고질화된 악습을 타파하기 위해 국회의원 후보들을 인터넷 상으로 신청받은 후 선별함으로써 기존 정치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정부 요직의 인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눠먹기 식이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진짜 인재들을 찾아 기용했다. 기존 정치와 180도 다르다는 평가가 나왔다.
 
프랑스는 정부 엘리트 자리를 민간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들에게는 내주지 않는 전통이 있다. 그러나 마크롱이 대통령이 되면서 이러한 전통은 깨지고 있다. 뉴 테크롤로지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민간 기업에서 일한 사람들을 정부 관료로 대거 기용하고 있다. 수상으로 임명된 에두아르 필리프는 공공과 민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경험을 쌓았다. 필리프 수상은 파리정치대학과 프랑스 ENA(에나·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한 후 민간기업과 미국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했다. 2007~2010년에는 아레바(Areva·원자력 발전 설비업체)에서 공적업무 부서 디렉터로 일했다. 수상실 총괄자인 브누아 바도-뒤마(Benoit Ribadeau-Dumas)도 민간과 공공분야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사람이다. 에나와 폴리테크닉을 졸업한 후 고위 공무원을 지냈으며 탈레스(Thales·항공산업), 사프랑(Safran·하이 테크놀로지), 조디악(Zodiac·항공우주) 등의 대기업에서 일했다.
 
‘고등교육과 연구·혁신’ 장관인 프레데리크 비달(Frederique Vidal)은 국립연구소의 엔지니어와 폴리테크닉대학 교수를 지냈고 민간기업 토탈(Total·에너지회사)에서 일했다. 환경부 장관 니콜라 윌로(Nicolas Hulot)는 우정국에서 일했고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했다. 보건부 장관 아네스 뷔젱(Agnes Buzyn)은 에나와 고등사범학교 출신으로 재정감독원과 크레디 아그리콜(Credit agricole) 은행에서 일했다. 노동부 장관 뮈리엘 페니코는 각료회의 자문을 거쳐 프랑스 산업연맹(Medef)에서 일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화부 장관, 농수산부 장관, 그리고 영토결속부 장관은 에나 졸업 후 도 간부로 일한 지방정치인이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부 안에도 일어나고 있다. 경제부 장관 브뤼노 르 메르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길을 걸어온 정치인이다. 그러나 경제부의 인사에는 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르 메르 장관은 경제부의 총괄자로 에나와 ESSEC(파리고등경제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티은행, 이태리 메디오방카(Mediobanca)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에마뉘엘 물렝을 선택했다. 부총괄자는 에나와 파리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HSBC 은행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또한 네스틀레(Nestle·농산물가공회사)와 Euro-RSCG(광고·마케팅회사)의 대표를 고문으로 삼았다. 경제부 간부 중 7명은 민간 기업에서 일했거나 창업한 사람이다.
 
이처럼 마크롱 정부는 민간과 공공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인재들을 기용해 국가의 보다 큰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드골주의자’들이 일반적으로 외부 인사들이 정치권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해왔던 것과 다른 모습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며 생활 상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인터넷으로 쇼핑을 하고, 재택근무를 하며, 사이버 상에서 강의를 듣는 등 과거와는 판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정치권이 구태를 벗어나는 일이 시급하다. 따라서 무엇보다 새로운 ‘진짜 인재’를 영입해야 정치가 살아남을 수 있다.
 
선거철마다 인재영입을 빙자한, 유권자의 눈을 속이는 구태의연한 정치를 멈추고 국가와 대의를 생각해야 할 때다. 촛불혁명의 준엄한 심판 앞에서도 정치권은 기존 패러다임에 갇혀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으니 참 암울하다. 이제라도 정치권은 진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고심하고 노력하라. 정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새 시대를 맞아 학문 간 융합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정부 인사들의 기용에 있어서도 융합이 필요하다. 문재인정부와 정치인들은 이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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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