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1990년대 초부터 대북사업에 몸담아 온 해중실업 권대원 대표는 24일 중국으로 급히 출장을 떠났다. 권 대표는 “(대북사업 관련) 현실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라며 “빠르게 우리 쪽으로 전화도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거치며 답보 상태였던 남북 경제협력(경협) 사업에 물꼬가 트이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경협 문제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중심 의제가 아니다” “경협은 비핵화에 따른 남북관계 진전이 있어야 가능한 부분”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일선 기업들의 분위기는 다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아직 정부에서 지침을 주거나 북측과 접촉하는 것은 없다”면서도 “기대감이 큰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관적인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북한의 연이은 핵·미사일 시험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가운데 경협 논의가 끼어들 공간은 없었다. 유엔 대북제재의 틈을 피해 민생 차원의 인도적 개발협력, 농업협력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등의 제언이 있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연이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 성사 등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면서 남북 경제협력 재개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25일 “북미 정상회담까지 거치고 나면 대북제재가 단계적으로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그 이후에는 남북 간 경제협력 복원을 통해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를 거쳐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 입각한 협력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대감을 키우는 이유는 현 정부 정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문재인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3대 벨트(동해권 에너지·자원벨트, 서해안 산업·물류·교통벨트, 비무장지대(DMZ) 환경·관광벨트)를 구축해 한반도 신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남북경협 활성화를 통해 통일 여건을 조성하고 고용창출과 경제성장률 제고, 경제통일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구상의 핵심내용인 ‘3대 경제벨트’와 ‘하나의 시장 협력’ 실현을 위한 세부 추진과제 구체화가 필요하다”며 “남북대화 과정에서 북한 측에 구상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설명하고 북한 측 경제개발 수요가 충분히 반영되도록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남북이 지난 2007년 10월4일 합의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선언)에 기반한 협력을 추구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10·4 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의 번영을 위해 경제협력사업을 공리공영과 유무상통 원칙에서 적극 활성화하고 지속적으로 확대·발전 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했다. 개성공업지구 1단계 건설 완성과 2단계 개발 착후, 문산-봉동 간 철도화물수송 시작,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등 구체적인 사항도 합의 내용에 포함됐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큰 희망을 걸고 있다. 변재용 중소기업중앙회 통일경제정보팀장은 “얼마 전부터 남북경협이 언급되는 상황에서 개성공단 문제도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며 “남북 정상회담 후 기업인들의 방북 신청도 추가로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전경련 회원사, 개성공단 입주기업 등 200여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해 25일 발표한 남북경제관계 전망 설문조사에서는 응답 기업의 82.5%가 ‘향후 남북관계가 희망적’이라고 답했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정상회담 이후 언제든지 공장을 가동할 수 있도록 내부적인 준비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개성공단 1단계 사업(330만㎡·100만평)도 끝나지 않았지만, 기업인들은 공단 전체 개발 로드맵인 3단계(6611만㎡·2천만평) 진행까지 염두에 둔 모습이다.
금강산관광 주사업자·개성공단 개발 사업권자이기도 한 현대아산 역시 사업 재개에 대비해 내부 준비를 하고 있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 경우 관광객 모집부터 금강산 현지 정비, 운영방안, 프로그램 등이 있어야 한다”며 “지난 10년 간 해오던 준비를 리뷰·업데이트 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5~2010년 설치·운영됐다가 5·24 조치에 의해 폐쇄된 개성공단 내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의 재가동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영일 효원물산 회장(남북투자기업협의회 회장)은 “남북 간 수시 만남과 대화의 장을 열어주기 위해 경협사무소를 개소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남북 상품 직거래가 가능한 가칭 ‘개성 국제시장’ 설립도 고려해봄직 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경협사무소 확장판 형태의 ‘판문점 연락사무소’ 설치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남북경협을 비롯해 안정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중장기적인 비전 제시가 필수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앞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월 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과 연도별 시행계획의 국회보고 시점을 규정, 연도별 시행계획이 남북관계로 인해 표류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남북관계발전 개정안’을 가결한 바 있다. 공공기관들의 남북 협력사업 참여를 촉진할 수 있는 내용의 법안 등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학원 등 시민단체가 주최한 남북정상회담 지지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남북 평화를 기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