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기자)한국 음악사의 마지막 르네상스인 '마왕' 신해철

메탈부터 퓨전국악까지 아우른 '지성 음악'의 총체…20년지기가 본 신해철
'신해철: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강헌|돌베개

입력 : 2018-05-17 오후 4:52:3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아직도, 새로 시도할 게 남았나 보네?”
“그러게. 형, 있잖아, 내가 갑자기 생각나서 세보니까 앨범만 스물일곱 장이더라고. 어느덧! 완전 원로가수지. 근데 말이야, 해도 해도 할 게 남아 있더라.”
 
2014년 1월 신해철은 마르지 않는 ‘꿈’을 꾸고 있었다. 크고 작은 건강 이상, 세상과의 불화 따위는 그의 추동력을 막을 수 없었다. 한밤 중 공장에서 막 나온 CD를 들고 찾아와 “아직도 할 게 남아 있다”고 읊어댔던 그. 그런 그를 ‘20년 지기’ 강헌은 ‘빛나는 청년’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음악평론가 강헌은 책 ‘신해철: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에서 시대를 동행한 고인의 족적을 이 같이 더듬어 간다. “낡고 부패한 기성세대를 불신하며 인문학적 사유로 새 세계를 열고자 한” 그의 음악과 삶이 저자의 입을 빌려 고스란히 전해진다.
 
1988 MBC 음악가요제 무대에 선 무한궤도의 신해철. 사진/유튜브 캡처
 
‘무한궤도’는 그의 삶뿐 아니라 한국 대중 음악사에 일대 사건이었다. 산업혁명의 근대성과 창의성을 담은 이 모던한 밴드 이름은 새 시대를 여는 축포의 소리와도 같았다. 1988년 크리스마스 이브 트윈 키보드에 의한 25마디 전주가 울려 퍼지는 순간,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저자는 이 곡을 두고 “한국 대중 음악사를 통틀어 높은 완성도와 폭발적인 대중성, 세대를 뛰어넘는 긴 생명력까지 두루 갖춘 가장 위대한 데뷔곡”이라고 칭한다.
 
신해철에게 밴드는 평생에 걸친 화두이자 숙명, 그리고 오랜 꿈이었다. ‘신중현과 엽전들’로 시작된 밴드의 명맥이 1980년대까지 간신이 유지되던 척박한 환경에서 그는 밴드로 최소한의 예술적 공동체를 꿈꿨다. 스스로 음악을 창조하고 연주하는 것, 나아가 자신이 녹음하고 자신만의 프로덕트를 완성하는 일련의 매커니즘으로 그는 자본이 지배하는 문화 컨베이어 벨트에 대항하려 했다. 신해철이 무한궤도 해체 후 솔로 활동에 성공했지만 다시 ‘넥스트’로 회귀한 이유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솔로로서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내고 스타덤에 오르고 나서, 그는 모든 사람의 예측을 뒤엎고 프로페셔널 밴드 수립을 향한 고난의 행군을 선택한다. 밴드를 통해 커리어를 쌓다 솔로로 전향하는 경우는 공식처럼 허다하지만, 밴드로 데뷔하고 솔로로 스타덤에 오른 뒤 다시 밴드로 회귀한 것은 아마도 신해철의 경우가 전무후무한 사건일 터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성’은 신해철 음악에 늘 전제돼 있었다. 메탈부터 발라드, 랩, 하우스, 퓨전 국악까지 다양한 장르를 순례하는 입체적 음악이었다. 동시에 솔로부터 넥스트에 이르기까지 ‘자아-가족-존재-세계’로 앨범별 콘셉트가 확장되는 ‘지성 음악’의 총체이기도 했다.
 
고(故) 신해철. 사진/뉴시스
 
정치, 사회적으로도 신해철은 적극적인 ‘행동주의자’였다. 거리낌 없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발언했고 행동했다. 대중예술인의 정치 사회적 개입을 아니꼽게 보는 시각에 반대하고 갑질을 서슴지 않는 방송이나 신문 관계자 앞에선 타협 없는 싸움닭이 됐다.
 
이 때문에 되려 까칠하거나 거만하다는 비판도 받게 됐지만, 저자는 “비록 귀여운 허세를 떤 적은 많아도 그의 본령은 솔직함과 그 솔직함 뒤에 도사리고 있는 언행일치의 자세였다”며 “‘마왕’이라는 트레이드 마크 별칭처럼 교주스러운 카리스마도 있는 반면 겸손함과 솔직함을 지닌 청년 같은 존재였다”고 회상한다.
 
신해철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 책의 제일 큰 묘미다. 대학가요제 대상 곡 ‘그대에게’가 아버지의 눈을 피해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하루 만에 작곡된 곡이라는 이야기, 46살의 나이에 오케스트라 지휘 배워보려 하니 ‘지휘자를 소개시켜 달라’ 부탁한 이야기 등이 곳곳에 등장한다.
 
책 '신해철'. 사진/돌베개
 
세상을 떠나기 전, 미완의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신해철은 솔로 앨범 ‘REBOOT MYSELF’의 두 번째 버전을 준비하며 넥스트 유닛버전, 기타리스트 신대철과의 ‘신대해철’ 프로젝트 등을 기획 중이었다. 또 저자와는 신해철의 곡들을 하나로 결집시킨 주크박스 뮤지컬 ‘더 히어로’(The Hero)란 작품도 준비하고 있었다. 이 뮤지컬의 플롯과 캐릭터가 완성될 즈음 그는 고인이 되고 말았다.
 
저자는 “벗에게 보내는 조금 긴 추도사일 뿐”이라고 글을 요약하지만, 사실 책은 한국 대중음악사 전체를 톺아 보게 한다. 신중현부터 패티김, 조용필, 산울림, 들국화, 서태지까지 이어지는 계보가 신해철을 중심에 두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예순 여섯 살까지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백발의 노인이 됐을 때 마스터피스를 발표하겠다던 신해철. 언제나 새롭게 ‘다음’을 꿈꾸던 그에게 저자는 ‘고(故)’라는 단어를 붙이기를 거부한다. 그의 음악이 여전히 가슴 속에 살아있는 한, 이름 역시 현재진행형이며 미래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저자 말마따나 그는 정녕 한국 대중음악사에 등장한 ‘마지막 르네상스인’이었다.
 
그를 읽고 쓰는 날 하늘이 무척이나 슬프다. 봄비가 묘하게 장마처럼 내린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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