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안창현·왕해나 기자] "주 52시간이요? 시스템 오픈이 코앞이고, 고객이 지켜보는데 어떻게 퇴근해요? 꿈도 못 꿉니다."
중견 시스템통합(SI) 기업에 근무하는 12년차 개발자 서모(38)씨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대한 질문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공공기관 및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SI 및 시스템유지보수(SM) 업무를 대행하는 업무 특성상, 각종 프로젝트 마감일을 지키기 위해 야근은 필수다. 시스템 오픈이 임박하면 주말 근무도 당연시된다. 고객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
SI업계는 통상 프로젝트 기간을 최대한 빠듯하게 책정한다. 발주자 입장에서는 기간을 하루라도 줄여야 인건비를 아껴 전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수주 기업은 프로젝트 기간을 보다 넉넉하게 잡길 원하지만 계약상 우월적 위치에 있는 발주 기업에게 강하게 요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씨는 "주 52시간이 시행되면 회사 밖에서라도 일을 해야 하는데 보안 때문에 외부에서는 시스템에 접속할 수 없다"며 "시스템 오픈 날짜를 맞추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선임 개발자 김모(43)씨는 "발주처의 요구사항이 갑자기 변경되거나 추가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계약사항에 없는 내용이라고 해도 갑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으니 야근과 주말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현실에서 주 52시간 제한은 또 다른 벽이 된다"고 말했다.
7월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는 대상은 300인 이상의 사업장이다. 이후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50~299명 사업장은 2020년 1월1일부터, 5~49명 사업장은 2021년 7월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의 적용을 받는다. 대기업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중견·중소기업은 이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 벌써부터 한숨이 나오는 이유다. IT서비스산업협회 관계자는 "보안 관제나 금융 시스템을 운영하는 보안 및 SI 기업들은 휴일이나 비상상황에 대비해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데 현행 제도는 업종 특성이 고려되지 않아 인건비 부담은 물론 경험이 풍부한 인력을 추가 확보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협회는 고용노동부에 주 52시간이 시행되는 7월 이전에 계약한 사업들에 대해서라도 유연성을 갖고 근로감독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24시간 통신과 인터넷·메신저 등의 서비스를 해야 하는 이동통신사와 소프트웨어 기업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휴대폰과 각종 인터넷 서비스의 경우 짧은 시간이라도 장애가 발생할 경우 소비자들이 큰 불편을 겪게 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인터넷·메신저 서비스는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서비스"라며 "서비스 장애가 반복되면 기업 신뢰도에 치명적이며 소비자의 불편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범적으로 주 52시간을 시행 중인 전자업계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연구개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업종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고 주 근무시간이 52시간으로 제한됐다는 지적이다. 한 반도체 기업 직원은 "연구개발은 기존 주 68시간도 모자란 경우가 많은데 52시간으로 제한을 하니 자발적으로 야근을 할 수밖에 없다"며 "오죽하면 회사에서 집에 가서 일하라고 보안코드를 주겠다는 말도 나왔다"고 말했다. 주 52시간이라는 근무시간을 억지로 맞추기 위해 웃지 못할 상황도 빚어졌다. 한 전자기업 직원은 "사무실 밖으로 나가면 무조건 근무시간에서 제외한다. 동료들과 잠시 머리를 식히며 대화하는 시간도 모두 따진다"며 "52시간을 맞춰야 하다 보니 또 하나의 일이 생긴 느낌"이라고 말했다.
박현준·안창현·왕해나 기자 pama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