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홍 기자] 한국지엠, 르노삼성 등 일부 완성차 업체들이 해외에서 생산된 차량을 수입해 판매하는 비중을 늘리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이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준다는 면에서 장점인 반면, 국내 공장의 생산물량이나 일자리를 잠식하는 등 국내 자동차 산업에는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지엠은 지난 7일 부산국제모터쇼에서 중형 SUV '이쿼녹스'를 공개하고 공식판매에 돌입했다. 이쿼녹스는 제너럴모터스(GM)가 캐나다와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하는 모델이다. 한국지엠은 지난달 31일 군산공장 폐쇄로 크루즈와 올란도가 단종되면서 국내에서는 스파크, 말리부, 트랙스 등만 생산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앞서 전기차 볼트(BOLT) 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볼트(VOLT)를 수입·판매했지만 최근에는 이쿼녹스 등 주력 차종으로 수입 범위를 확대했다. 르노삼성도 지난달 14일부터 소형 해치백 '클리오'의 수입·판매를 시작했다. 클리오는 르노가 터키, 프랑스 공장에서 생산한다.
올해 한국지엠, 르노삼성을 중심으로 해외 생산차량 도입이 증가하는 가운데 국내 자동차 업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한국지엠
무늬만 국산차의 사례가 늘어나는 원인을 보면, 신차 개발보다 용이한 데다 국내에 있는 영업망을 활용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시장을 효율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는 이점이 지목된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4월말 법정관리 위기에서 벗어난 후 판매량을 빠른 시간 내에 회복하기 위해 이쿼녹스 도입을 올 상반기로 앞당겼다"면서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해 고객 선택의 폭을 넓히겠다는 의도도 있다"고 설명했다. 르노삼성도 올해 특별한 신차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실적 개선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던 상황이다. 클리오는 르노의 로장쥬 엠블럼을 장착, 수입차 느낌을 주면서도 르노삼성의 전국 230여개 판매 전시장과 470여개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공장에서 생산하려면 연간 최소 6만대에서 10만대 수준에 도달해야 라인 유지가 가능하다"면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차량의 판매량이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업체들이 국내 생산보다 수입·판매를 선택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흐름이 국내 자동차 산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자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수입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생산되는 차종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OEM 차량 비중이 증가할 경우 그만큼 국내 공장 물량이 감소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국내 자동차 생산은 2011년 466만대에서 지난해 411만대로 55만대 감소했고, 2021년까지 360만대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국내 공장의 원가경쟁력 약화와 경직된 노사관계가 가장 큰 요인이지만 OEM 차량으로 인한 잠식효과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재홍 기자 maroniev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