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버스 기사가 다음 운행 전까지의 대기 시간에 청소와 차량 점검 등 업무를 수행했더라도 이를 모두 근로 시간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근로 시간에 포함되는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는 대기 시간을 일률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문모씨 등 5명이 H사 등 운수업체 2곳을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 관한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에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버스 운행을 마친 후 다음 운행 전까지 대기하는 시간에는 근로 시간에 해당하지 않는 시간이 포함돼 있다고 봐야 하므로 이 사건 대기시간 전부가 근로 시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H사 등이 소속된 서울시 버스운송사업조합과 문씨 등이 소속된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서울시 버스노동조합은 주간 5일은 기본근로 8시간, 연장근로 1시간을 포함한 9시간으로 하고, 근무 시간 중에 휴식시간을 준다는 내용의 임금협정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H사 등은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했지만, 문씨 등은 "버스 운행 시간 외에도 1일 20분씩의 운행 준비와 정리 시간, 대기 시간, 가스 충전과 교육 시간은 근로 시간에 포함해야 한다"면서 추가 수당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문씨 등의 청구를 받아들여 H사 등이 170만~47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기 시간은 여러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일정하지 않은 점, 원고들은 배차 담당 직원의 지시에 따라 다음 운행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점, 원고들은 대기 시간 중에 식사와 휴식을 취하는 외에 차량 정비 또는 검사를 받거나 차량 청소를 하기도 하는 점 등의 사정에 비춰 보면 대기 시간은 원고들에게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시간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피고들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있는 시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대기 시간은 근로 시간에 포함된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H사 등은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기각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들이 조사한 운행내용에서 보더라도 버스 운행 사이의 대기 시간이 2분 또는 5분, 8분 등 10분 미만인 경우도 여러 차례 있는 점, 대기 시간에 운행 준비를 하는바 그 성질상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버스 운전과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련성이 있는 업무로서 그 시간은 근로 시간에 포함돼야 하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피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원심과 달랐다. 대법원은 "원고들은 이 사건 대기 시간 식사나 휴식 외에 청소, 차량 점검, 검사 등의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으므로 이 사건 대기 시간 전부가 근로 시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나, 원고들이 이 사건 대기시간 동안 임금협정을 통해 근로 시간에 이미 반영된 1시간을 초과해 청소, 차량 점검, 검사 등의 업무를 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이 사건 대기 시간이 다소 불규칙하기는 했으나, 다음 운행 버스의 출발시각이 배차표에 미리 정해져 있었으므로 버스 기사들이 이를 휴식을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피고들 소속 버스 기사들은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식사를 하는 등 대기 시간 대부분을 자유롭게 활용한 것으로 보이고, 개인적인 용무를 보기 위해 외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버스 기사들의 버스 운행 사이 대기 시간이 근로 시간에 해당하는지는 개별 사안에 따라 사용자의 지휘·감독이 미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따라서 버스 운행 사이 대기 시간 중 사용자의 지휘·감독이 미치는 시간은 근로 시간에 해당하나, 대기 시간이라도 사용자의 지휘·감독이 미치지 않고 근로자의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시간은 근로 시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이 판결은 버스 기사들의 버스 운행 사이 대기 시간이 근로 시간인지 휴식 시간인지에 관해 더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