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직접 조사를 앞당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이른바 ‘스모킹 건’을 확보한 데다가, 양 전 대법원장 등 다른 관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 현실화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임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자택을 압수수색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는 주말동안에도 수사팀 전원이 출근해 압수해온 증거물들을 분석했다. 검찰은 특히, 이번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임 전 차장의 USB 분석에 주력하고 있다. 이 USB에는 임 전 차장이 재임시 제작한 법원행정처 업무자료 백업본이 저장돼 있다.
앞서 임 전 차장은 지난해 3월 사퇴하면서 자신의 컴퓨터 파일을 백업한 사실을 인정했지만, 지난 5월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이 ‘임 전 차장의 행위는 형사처벌 사안으로 볼 수 없다’'고 발표한 이후 업무수첩과 함께 백업본을 저장한 USB를 폐기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번 압수수색으로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특조단이 임 전 차장의 업무자료를 사실성 전혀 조사하지 못했던 점, 임 전 차장이 거짓해명까지 하면서 백업본 USB를 은닉하고 있었던 점 등에 비춰볼 때,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재판거래’ 의혹 문건의 보고라인이나 추가 주요 문건들이 USB에 저장돼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사법농단’ 관련 핵심 인물들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함께 청구했다. 다만, 대법원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이언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임 전 차장을 뺀 나머지 사람들에 대해 “압수수색을 할만 한 필요성이 소명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검찰 관계자는 22일 “기각 사유를 이해할 수 없다. 압수수색 영장을 재청구할지 여부는 수사 계획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뭐라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상 영장 재청구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법조계 분석이다.
특수수사에 능한 한 고위검찰 간부 출신 법조인은 “추후 어떤 사정변경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법원이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특수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도 “법원이 임 전 차장에 대한 영장만 발부했다는 것은 일종의 (추가 압수수색은 어렵다는)사인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검찰로서도 결과가 예상되는 무익한 절차를 반복하기 보다는 속전속결을 위한 정면승부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 등에 대한 소환 조사는 임 전 차장 소환 조사가 끝난 뒤 이뤄질 전망이다. 다만, 검찰이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를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 디지털 증거추출을 하려면 임 전 차장의 동의나 참관이 있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단기간에 끝나기는 쉽지 않다. 이에 따라 7월 말쯤 임 전 차장에 대한 조사에 이어 8월 초쯤 양 전 대법원장 또는 박 전 처장의 소환 조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7년 6월1일 퇴임한 박병대(오른쪽) 당시 대법관이 양승태 대법원장과 함께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