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개입…재계 "관치경제 우려"

"정책적 수단 전락 걱정, 시장 자율에 맡겨야"

입력 : 2018-07-30 오후 5:53:32
[뉴스토마토 황세준·김진양·박현준·왕해나 기자] 정부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결정을 바라보는 재계 시선이 우려로 가득하다. 국민연금기금기금운용위원회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제반 여건이 구비되거나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한 경우에 한해 시행한다고 조건을 달았지만 기업들은 불안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공단과 같은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자율적 의결권 행사 지침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30일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는 수탁자 책임 원칙에 따라 주주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개별 기업의 경영활동에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시장을 교란시키는 일이 없도록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돼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국민연금의 경영권 참여가 관치경제의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의결이 있어야 주주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경영 참여의 길이 열린 것만으로도 특정 기업이 타깃이 될 수 있다"며 "해외의 유사한 사례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시장의 큰 손으로 지분율이 상당하다"며 "주주권 행사가 정부의 정책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는 점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시장의 자율경쟁 체제에 정부의 정책적 의도가 과도하게 반영될 가능성에 대해 특히 걱정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시장 자율에 맡기는 것이 가장 건강한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라며 "정책적 목적을 갖고 인위적으로 기업을 그 방향에 맞게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은 빠른 시장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며 "스튜어드십 코드로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독립성이 약화될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상당하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7%를 점유 중이다.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약 300곳이며, 10% 이상 지분율 보유한 기업도 약 90곳이다.
 
삼성전자의 국민연금 지분율은 지난 3월31일 기준 9.47%다. 단일 주주 중 지분율이 가장 높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일가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 합계(20.21%)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단일 주주로는 지분율이 가장 높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설 경우 삼성전자의 정책 방향도 달리 할 수밖에 없다. SK텔레콤의 자회사에서 벗어나야 하는 SK하이닉스(10.0%), 지배구조 개편안을 마련 중인 현대자동차(8.44%)도 국민연금의 지분율이 상당하다. 현대차그룹은 앞서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안에 대한 국민연금 입장이 확인되지 않자, 이를 철회한 바 있다.
 
포스코와 KT도 국민연금 행보에 민감하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두 곳은 민영화됐지만 여전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되는 수난을 겪고 있다. 국민연금은 포스코 10.82%, KT 10.21%의 지분을 각각 보유 중이다. 포스코는 권오준 전 회장이 지난 4월 임기를 2년 남겨둔 상황에서 스스로 물러났고, 최근 최정우 신임 회장이 취임했다. KT의 경우 경찰이 황창규 회장을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로 조사 중이다. 황 회장의 임기는 2020년 주총(통상 3월)까지다. 이외에도 총수 일가의 무분별한 사내이사 (재)선임 안도 국민연금의 제동에 걸릴 수 있다.
 
황세준·김진양·박현준·왕해나 기자 pama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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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