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기자)아버지와의 여행, ‘삶의 연금술’ 되다

불편하지만 용기 낸 아들…"아버지, 저랑 파리 가실래요?"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실 뻔|김신 지음|책읽는고양이 펴냄

입력 : 2018-08-23 오후 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는 아들에 대한 사랑을 깨달아가는 한 아버지의 성장통이 그려진다.
 
비즈니스맨으로 성공한 료타(아버지)는 아들(케이타)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한 없이 아마추어적이다. 오로지 이성적이고, 목표지향적으로 케이타를 채근할 뿐 진정 사랑을 주는 방식은 모른다. 어느날 6년 간 키워온 자식이 사실은 바뀐 아이였다는 소식을 병원 측으로부터 듣게 되고, 그는 케이타와 혈육 관계가 연결된 친자식(류세이)을 맞바꾸게 된다.
 
하지만 6년 간 남의 품에 있던 친자식은 생각도, 행동도 자신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심지어 료타를 진짜 아버지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아들과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는’ 유다이(케이타의 친아버지)에게 간 케이타는 마음의 상처가 서서히 아문다.
 
아이들 모두에게 외면 받는 료타는 비로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돌아보게 되고, 케이타를 찾아가 용서를 구한다. 마지막 공원에서 둘이 부둥켜 안고 우는 씬에서는 그가 케이타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 하다. ‘정말 미안... 나도 이번 생에 아버지는 처음이라...’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속의 료타와 아들 케이타. 사진/뉴시스
 
김신의 여행 에세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실 뻔’을 읽고서는 내내 히로카즈 감독의 이 영화가 머리 속을 스쳐갔다. ‘낳은 정’과 ‘기른 정’ 사이를 고민하는 영화 속 설정은 분명 책과 판이하게 달랐지만, ‘아버지의 역할과 부자간 사랑’이란 주제를 잔잔한 울림으로 전달한다는 지점에서는 묘하게 닮아 있어서다.
 
책의 내용은 이렇다. 40대인 저자는 아버지가 불편했다. 마음 깊이 분노와 원망, 미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생각해왔던 아버지는 가족과는 대화가 없고, 친구에게 친절했다. 어머니 앞에선 밥상을 엎어버리고 늘 화가 나 계셨다. 어머니와 결국 이혼하신 그를 향해 저자는 차가운 모진 말을 던져댔다. “난 절대 아버지처럼 그 모양으로 살지는 않을 겁니다. 두고 보세요.”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 이야기를 듣게 됐다.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마음이 공허하다는 얘기였다. 살아계셨을 때는 밉고, 힘든 존재였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허전했다고 그들은 입을 모았다.
 
전부 자신의 이야기인 그들의 말에서 저자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항시 기억하라)’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3개월 간 망설이고 망설이다 아버지에게 용기를 냈다. “아버지… 저랑… 파리 여행 가실래요?”
 
‘가서 무슨 말을 하나, 불편하지는 않을까.’ 난생 첫 아버지와의 여행은 저자에게 쉽지 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하나, 둘 넘어 섰다. 아들은 인천공항에서 파리행 비행기를 타고, 마치 이방인에게 묻듯 질문을 던진다. “꿈이 뭐였어요?”, “젊었을 때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했어요?” 그러다 어머니와의 이혼 이야기에 이르자, 그는 그간의 몰랐던 속사정을 듣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의 관점에서만 판단하고 아버지를 정죄해왔던 자신을 뉘우친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실뻔' 작가 김신. 사진/책읽는고양이
 
파리에 도착한 두 남자는 몽마르뜨 언덕을 걷고, 에펠탑 앞 공터에서 해질녘 와인 한 병을 비운다. 20년간 여행업계에서 일해 온 아들이 파리의 명소에 얽힌 이야기, 역사와 문화를 안내하면 아버지는 꼼꼼히 메모를 한다. 아버지는 일주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들에게 얘기한다.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 동안 너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던 거 정말 미안하다.” “괜찮아요 아버지. 아버지는 제 아버지인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두 남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불편함에 맞선 저자와 가족의 삶은 ‘연금술’처럼 바뀌어갔다. 쇠붙이를 금으로 바꾸겠다던 연금술처럼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었다. 중학생인 딸과 함께 아버지와 파리의 똑같은 루트로 여행하고, 일제시대 나고야에서 목포로 향하던 배를 타다 바다에 뛰어내린 외할아버지의 행로를 어머니와 함께 거닐며 추모한다.
 
저자는 아버지와 함께 한 파리 여행의 루트와 동일하게 딸과도 여행했다. 사진/책읽는고양이
 
“(연금술은) 과학 시간의 이야기가 아닌 삶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선택하고 부딪혀보면 삶의 연금술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다. (중략) 나는 아버지와의 파리 여행을 통해 여행이라는 것이 가족 간의 오래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아버지와 아들은 불편한 사이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이지만 잘 보지 않고, 서로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다. 특히 가정에서 가장의 자리가 사라지는 요즘에는 더 그렇다.
 
하지만 우리의 아버지들도 ‘생에 아버지는 처음’인 존재들이다. 히로카즈 작품 속 료타처럼 처음이니 서툴고 어렵고 힘든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아들로서 용기를 냈고 삶을 ‘마법’처럼 바꿨다. ‘(혼자 만의) 방에 들어가실 뻔’ 했던 아버지는 이제 가족과 함께다.
 
“삶의 기적이 있다면 이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오래된 가족 내의 상처를 눈물로 승화하고, 치유하고 회복하게 하는 일. 슬픔을 기쁨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는 연금술.”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실뻔'. 사진/책읽는고양이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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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