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보관 중이던 USB를 확보했다. 이 USB는 양 전 대법원장이 퇴직하면서 가지고 나온 것으로 수사상 의미가 작지 않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특별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일 "전날 양 전 대법원장 압수수색 과정에서 자택 서재에 보관 중이던 USB 2개를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에 '승용차'만을 압수수색 장소로 명시했지만 검찰은 적법한 증거확보라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참여인 등의 진술 등에 의해 압수할 물건이 다른 장소에 보관되어 있음이 확인되는 경우 그 보관 장소를 압수수색할 수 있도록 영장에 기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USB에 대해 본인이 대법원장 직을 퇴직하면서 가지고 나온 것이 서재에 보관돼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퇴임 전인 2017년 6월26일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번에 검찰이 확보한 USB가 주목되는 이유는 양 전 대법원장과 사법농단 의혹간의 관계를 잇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물증이기 때문이다. 앞서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10월 양 전 대법원장 PC 하드디스크를 디가우징했다고 밝혔다.
퇴임시 USB를 가지고 나온 것 자체와 담겨 있는 내용의 비밀성 면에서도 문제가 된다. 법률가들에 따르면, 일단 반출 당시 USB가 누구 소유였는지에 따라 법리상으로 절도혐의가 검토될 수 있다. 내용이 비밀에 해당하는 것이면 형법상 비밀누설죄를 따져봐야 한다.
역사상 처음 검찰의 강제수사 대상이 된 양 전 대법원장도 대형로펌 변호인을 선임하면서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최정숙(사진)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와 같은 로펌 소속 변호사 1명을 변호인으로 선임, 최근 검찰에 선임계를 냈다.
최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23기로 수사 최종 지휘권자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사법연수원 동기이다. 대검찰청 연구관과 서울중앙지검 검사, 서울중앙지검 공판1부장, 수원지검 형사 3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창원지검 통영지청장으로 근무하다가 2015년 법무법인(유한) 로고스 변호사로 개업했다. 최 변호사는 현직 검사로 있을 당시 여러 미담을 남긴 인물로, 선·후배나 검찰 조직 안팎을 불문하고 두루 두터운 신망을 얻었던 인물이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압수수색이 전격 실시되면서 소환시기가 당겨지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서는 연말이나 늦으면 내년 초까지도 수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아직 우세하다. 양 전 대법원장에 앞서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소환 조사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이번에 강제수사 대상이 된 차한성·박병대·고영환 전 대법관 등 사법농단 당시 법원행정처를 지휘했던 사람들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
수사팀을 비롯한 검찰로서도 부담이 적지 않다. 일단 '강제수사'라는 패를 던졌지만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 지 벌써 석달이나 지난 상황에서 유력한 물증이 아직 남아 있을지 불투명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물론이고 대법관 3명과 임 전 차장까지 모두 내로라하는 법률 전문가다. 검사장 출신의 한 형사 전문변호사는 "수사 보다 기소 후가 문제"라고 말했다.
최기철·홍연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