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음악으로 ‘슬라슬라’ 하리,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입력 : 2018-10-08 오후 5:13:23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다음엔 신곡을 라이브로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도와주셔야 해요. 혼자 하려면 좀 무섭거든요.우워우어어어어”
 
“우워우어어어어”
 
모세 섬니가 중후한 음성으로 리드하니, 관객들이 아프리카 원주민 마냥 입을 둥글게 말며 따라 했다. “좋아요. 조금 더 크게. 멈추지 마세요! 당신이 음악을 사랑한다면.” 
 
이어 짙게 깔린 사람들의 의성어 위에 각종 음들을 차곡 차곡 쌓아나가는 섬니. 손으로 마이크를 쳐대며 박자를 만들고 휘파람과 박수, 스냅핑거로 토속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소리는 스캣과 허밍, 절규에 가까운 외마디 비명으로 확장되며 점차 신비롭고 장엄해졌다. 
 
'슬라슬라' 두번째 무대에 오른 모세 섬니. 사진/프라이빗커브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 백인 경찰의 총격에 사살된 흑인 소년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곡(‘랭크 앤 파일’)은 그렇게 그곳에 모인 관객들을 향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묻고 있었다. 인종적인 차별과 기원, 휴머니즘에 대해 섬니가 던진 물음은 음악을 타고 와 객석에 모인 이들의 삶을 끝없이 되새김질 시켰다. “제가 한국에서 공연은 처음인데, 여러분 정말로 아름답군요.”
 
7일 맑은 하늘 아래 가을 바람이 올림픽공원의 잔디마당을 살포시 간지럽히던 시간, 섬니는 자신의 밴드 멤버들과 삶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건네고 있었다. 공기를 가득 머금은 가성의 소리는 어쿠스틱 기타와 신시사이저, 퍼커션 등 다양한 질감의 악기와 맞물려 그 만의 신선한 소리로 통합되고 있었다.
 
가나 출신인 그는 LA에서 태어났지만 아프리카계 흑인이라는 이유로 어렸을 때부터 차별을 받으며 자라왔다. 이런 성장 배경 때문에 그의 작품은 대체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그로부터 입은 상처를 보듬는 듯한 서정의 곡들이 많다. 이날도 ‘quarrel’, ‘Worth it’, ‘Don’t bother calling’ 등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곡을 펼쳐 보이자 객석에서는 박수 세례가 쏟아졌다.
 
모세 섬니. 사진/프라이빗커브
 
6일 태풍의 영향으로 행사의 메인 격인 영화 축제는 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8(슬라슬라 2018)’은 다음날 행사의 목표를 최대한 이행하려는 모습이었다. 섬니 외에도 ‘여유로운 삶의 발견’이란 캐치프레이즈에 어울리는 감성의 뮤지션들이 영화 콘텐츠의 빈자리를 성실하게 채워나갔다. 
 
뉴 호프 클럽. 사진/프라이빗커브
 
영국 3인조 밴드 ‘뉴 호프 클럽’은 ‘Tiger Feet’, ‘Medicine’, ‘Perfume’ 등 자신들의 대표곡을 연주하면서도 ‘I wanna hold your hands’, ‘she loves you’ 등 비틀즈 메들리를 불러 박수를 받았다. 또 영국 4인조 밴드 ‘더 뱀프스’는 ‘stayin up’, ‘last night’, ‘can we dance’ 등 자신들의 대표곡을 함께 목청껏 따라 불러주는 팬들을 보며 감격에 젖었다. 
 
영국 4인조 밴드 더 뱀프스. 사진/프라이빗커브
 
미국 출신의 10인조 노신사 밴드 ‘타워 오브 파워(TOP)’는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을 이날 ‘슬라슬라’의 피날레 무대로 선사했다. 꽃난방에 선글라스를 착장하고 색소폰과 신시사이저, 기타 등의 악기를 둘레 멘 이들은 음악으로 연신 ‘영원한 젊음’을 표현했다. 
 
미국 10인조 밴드 '타워 오브 파워'. 사진/프라이빗커브
 
‘TOP’를 외쳐달라고 주문하며 “우리 신곡을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다운해주고, 50주년 다큐멘터리도 나왔으니 봐달라”고 웃는 리더 에밀리오 카스티요의 멘트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여러분 빅 러브를 해보세요. 우리는 빅 러브를 이렇게 부르고 표현한답니다.”
 
카스티요가 50년의 세월 동안 합을 맞춰 온 멤버들을 소개하며 껴안는 모습을 보이자 가을밤 찬공기에 움츠리던 관객들이 가슴을 활짝 펴고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타워 오브 파워'의 리더 에밀리오 카스티요. 사진/프라이빗커브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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