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사법농단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핵심 인사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범죄 소명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 검사)’은 주말인 20일 오전 9시30분부터 임 전 차장을 소환 조사했다. 지난 15일 첫 소환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 소환 조사다.
검찰은 이날 조사에서 임 전 차장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대해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혐의는 직권남용과 함께, 임 전 차장은 물론 전 법원행정처 일선 심의관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연루자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 혐의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물론, ‘재판개입’ 또는 ‘재판거래’ 의혹의 폭발력이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크다. 그러나 수사 단계에서 이 사실에 적용되는 ‘직권남용’의 범죄 소명이 쉽지 않을뿐더러 관련자들 기소 이후 법정에서도 대부분 무죄로 선고 날 가능성이 크다.
MB·국정농단·수사외압 사건, '직권남용' 무죄
최근 1심 선고가 나온 이명박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등 ‘국정농단 사범’, 강원랜드 비리 수사외압 의혹 관련자들도 직권남용 혐의 부분에 대해서는 대부분 무죄를 선고받았다.
더욱이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이제까지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과 구속영장은 대부분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가 적시됐지만, 법원은 유독 이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죄가 안 된다고 봤다.
임 전 차장도 ‘재판개입 또는 거래’ 등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될 수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정당한 업무협조였다’거나 ‘실무자들이 알아서 한 것’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도 논란이 착잡하게 엉켜 있는 직권남용 혐의 보다는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입증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확보한 인적·물적 증거도 이 혐의에 집중돼 있다. 이와 함께 적용될 혐의로는 직권남용과 허위문서작성, 절도, 공직자윤리법 위반,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이 있다.
퇴임 전·후로 공무상 비밀 누설
임 전 차장의 대표적인 혐의인 공무상 비밀누설은 그의 퇴임 전과 후로 나뉜다. 퇴임 전 그는 헌법재판소에 파견된 최모 판사를 통해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 정보를 수집하고, 법관비리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해 수사기밀 취득을 지시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박 전 대통령 비선진료진의 특허소송 정보와 국정농단 혐의에 대한 법률자문 의혹도 있다.
퇴임 후에는 법원행정처 재임 중 취득한 사법부 내 중요 정보를 외부로 유출했다.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 전후로, 검찰에 대한 대응방안을 세운 정황도 있다. 현직 판사들을 통해 정보를 빼냈다는 혐의가 적용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에는 자신의 법률사무소 직원의 지인 명의로 차명폰을 사용한 혐의도 추가됐다. 이 혐의들은 모두 그동안의 검찰의 압수수색과 임 전 차장 본인의 해명으로 확인된 것들이다.
검찰이 임 전 차장을 전격 소환하면서 사법농단 의혹 사건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임 전 차장이 구속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법원이 이미 이번 사건에 대한 강제 수사에 제동을 걸면서 임 전 차장에게 적용될 수 있는 판단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이 같은 사실에 대해 모순된 판단을 할 수는 없다.
법원, '공무상비밀누설' 판단 예고
그 단적인 예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이다. 유 전 재판연구관은 지난 2014년 2월부터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 2016년 2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수석재판연구관으로 일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재판 보고서 작성에 관여하고 이를 임 전 차장 등에게 보고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퇴직할 당시에는 재판연구관들로부터 받은 재판 보고서 등 대법원 내부 주요 기밀자료 원본 등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허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9월20일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검찰의 영장 청구를 기각하며 "영장청구서 기재 피의사실 중 변호사법위반의 점을 제외한 나머지는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등 죄가 되지 않거나 범죄 성립 여부에 의문이 존재하므로 피의사실과 관련된 문건 등을 삭제한 것을 들어 범죄의 증거를 인멸하는 행위를 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또 "그 밖에 문건 등 삭제 경위에 관한 피의자와 참여자의 진술(‘압수·수색영장의 집행 당시 영장에 기재된 방법을 어긴 위법한 집행시도가 있었고 피의사실은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인지한 것이며, 피의자는 수사기관에 의해 언론에 알려지고 보도된 압수·수색영장 기각사유가 범죄 불성립이라는 것을 알고, 향후 무관정보의 탐색·수집 시도가 재차 이어질 것을 우려하여 삭제한 것’이라는 취지) 등을 종합해 볼 때,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압수수색 기각시에는 "기밀자료"
법원의 영장기각 직후 검찰은 "그간 영장판사는 재판 관련 자료에 대해 '재판의 본질'이므로 압수수색조차 할 수 없는 기밀 자료라고 하면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해 왔는데, 이날은 똑같은 재판 관련 자료를 두고 비밀이 아니니 빼내도 죄가 안 된다고 하면서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사법농단 의혹’의 직접 피해자이기도 한 서기호 변호사(전 정의당 의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관련 전·현직 법관들이 구속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