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730kg 바퀴가 폭주하던 순간…아, 인생은 광대여라

곡예에 광대극 얹은 태양의 서커스 '쿠자'…2300여 관객 '비현실 세계'로의 초대

입력 : 2018-11-06 오전 11:07:53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노랑과 파랑 배합의 커튼을 제치니, 어린 시절의 동화 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코를 찌르는 팝콘냄새와 흥겨운 노랫소리, 비밀스러운 고철계단. 요소 하나, 하나가 ‘현실 아닌 현실’을 주조해내고 있었다. 4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 세워진 지름 51m·높이 20m의 거대한 서커스 텐트(빅탑)’ 안. ‘태양의 서커스: 쿠자’ 공연이 펼쳐질 이 곳은 바깥 세상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비현실적 아우라를 하염없이 뿜어대고 있었다.
 
'태양의 서커스: 쿠자'가 펼쳐지는 잠실 내 빅탑.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텐트 안은 이미 따스한 축제 기운이 약동하고 있었다. 공연 시작 10분 전, 우스꽝스러운 복장의 광대들이 공연인지, 장난인지 모를 팬터마임 연기를 할 무렵이었다. 관객들의 머리 위에 팝콘을 얹거나 260도 반원형으로 설계된 공연장을 뛰어다니자 이내 웃음 바다가 된다. 장난기 넘치는 너스레를 떨다 2300여석이 가득 채워질 무렵 광대들은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우리의 ‘쇼’를 보길 원하십니까?” “신사 숙녀 여러분 태양의 서커스 쿠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윽고 무대가 암전되더니 공연은 천진난만한 어릿광대 ‘이노센트(Innocent)’ 이야기로 흘러갔다. 연을 날리다 우연히 장난감 상자 뚜껑을 여는 그는 ‘트릭스터(Trickster)’란 인물을 만나고, ‘쿠자의 세계’를 탐험하게 된다. ‘쿠자’는 ‘상자’, ‘보물’을 뜻하는 고대 인도어 ‘코자(KOZA)’에서 유래한 단어다. 극상에서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이 선물 상자 안에서 나온다는 은유를 담고 있다. 
 
쿠자 '트릭스터'. 사진/마스트 엔터테인먼트·뉴시스
 
트릭스터가 요술봉을 흔들 때마다 이노센트는 곡예, 광대의 세계를 교차하며 마주하게 된다. 
 
광대 세계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곡예 이후의 ‘이완 작용’에 가깝다. 킹, 광대, 매드 독(성질 사나운 애완견) 등 캐릭터가 나타나는데, 이노센트의 호기심 어린 눈이 이들과 차례로 만난다. 짧은 영어 외에 이렇다 할 대사는 없지만 슬랩스틱 만으로 극의 전개를 끌어간다. 오히려 이들의 몸짓과 표정 연기에 주목하게 됨으로써 스토리에 몰입하게끔 되는 반전효과가 생긴다. 
 
관객을 무대 위로 불러 바보연기를 하거나, 춤을 추는 등의 장면은 ‘소통’에 관한 주제를 부각시킨다. 서로 왕관을 쟁탈하기 위해 싸우는 장면에서는 인간의 선악과 본질적 욕망에 대한 면모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감독 데이비드 샤이너의 의도처럼 폭력적이고 잔혹한 인간 세계를 깊숙이 통찰하는 ‘광대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높이 7.6미터의 두 기둥 사이에 설치되는 '하이 와이어'. 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PRM
 
생의 굴레를 한없이 준엄하게 느끼게 하는 건 바로 곡예의 세계다. 이노센트가 초반부 마주하게 되는 곡예 중 하나는 ‘컨토션(Contortion·연체곡예)’. 몸을 절반으로 접은 한 곡예사 위로 다른 곡예사가 물구나무를 서고, 또 다른 곡예사가 두 팔로 균형을 잡는다. 금빛 찬란한 옷을 입은 이들은 몸을 뒤틀거나 휘는 움직임으로 곡예 여행의 닻을 올린다. 마치 금관을 연상시키는 듯한 아름다운 조형미가 관객들 시선을 단숨에 사로 잡는다.
 
이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액트들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7.6미터 거대한 기둥 두 개 사이에 걸쳐진 4.5미터의 ‘하이 와이어’. 무거운 철봉을 들거나 자전거를 타고 곡예사들은 외줄을 아슬아슬하게 탄다. 특히 두 곡예사가 자전거를 함께 타고 갈 땐 둘 사이의 막대기 위에 다른 곡예사가 올라타는 장면이 있는데, 이 부분은 1부에서 탄성이 가장 많이 쏟아지는 부분이다.
 
730kg 바퀴 두 개가 돌아가는 '휠 오브 데스(wheel of death)'. 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PRM
 
730kg 두 개의 거대한 바퀴가 등장할 무렵 극은 절정의 순간에 도달한다. 액트의 명칭 ‘휠 오브 데스(Wheel of Death)’조차 죽음에 도전하는 인간을 연상케 한다. 거대한 두 바퀴는 두 곡예사가 차례로 올라 타기 시작한 순간부터 톱니바퀴처럼 폭주하기 시작한다. 
 
곡예사들은 점차 이 바퀴 안에서 바퀴를 돌리다 바퀴 위로 이동하는데, 이때부터 눈을 가리거나 입을 막는 관객들이 하나, 둘 나타난다. 거대한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이 두 개의 바퀴 위에 선 이들은 빠르게 줄넘기도 하고, 넘어지는 듯한 제스처로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끈에 발 한 쪽만 건 채 하늘을 나는 듯한 공중 곡예, 8개 의자를 쌓아 올린 7m 높이의 탑 위에서 마지막 의자를 비스듬히 쌓아 올리고 그 위에 거꾸로 균형을 서는 묘기 등도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 무대들이다.
 
광대와 매드독. 사진/마스트엔터테인먼트·PRM
 
예술적인 조명과 의상, 이국적인 라이브 뮤직은 곡예와 광대극의 요소를 살린 명품 조연들이었다. 무대 세트가 변경될 때마다 무빙 타워 ‘바타클랑(Bataclan)’이 앞으로 튀어나와 관객들을 만나고, 이 2층에 자리잡은 트럼펫, 트럼본, 일렉기타, 라이브 가수 등 8인조 밴드가 이국적인 음악을 선사한다. 인도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1부와 달리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2부에서는 ‘스켈레톤’ 차림의 토속적 배우들도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실제로 내한 공연에 동원된 배우만 무려 22개국 110여명이다.
 
1980년대 초 20명의 거리예술가들이 모여 시작한 ‘태양의 서커스’는 지난 30여년 동안 세계 6대륙 60개국, 450여개 도시에서 1억9000만 명 이상의 관객과 만나며 세계적 명성을 쌓아왔다. 연 매출 8.5억 달러, 연간 티켓판매 550만장 규모로 문화예술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꼽힌다. 
 
국내에는 2007년 '퀴담'을 시작으로 2008년 '알레그리아', 2011년 '바레카이', 2013년 '마이클 잭슨 이모털 월드투어', 2015년 '퀴담' 순으로 진행됐다. 실제 서커스 만큼이나 아찔한 '곡예 예술'이 특징인 '쿠자'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3일 초연한 태양의서커스 '쿠자'는 오는 12월30일까지 잠실 종합운동장 내 빅탑씨어터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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