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책임)사회적 관점에서 장애로 간주될 수 있는 것들

입력 : 2018-11-19 오전 8:00:00
2014년 12월 유럽사법재판소(Court of Justice of the European Union, CJEU)는 차별과 비만, 장애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내용은 '비만을 이유로 한 직장 내 차별이 유럽의 고용법을 위반한 것인가?', '비만은 장애로 간주될 수 있는가?'라는 두 가지 질의에 대한 덴마크 법정의 해석이었다. 
 
덴마크 한 소도시가 운영하고 있는 보육원에서 보모로 15년간 일해 온 칼토프트(Karsten Kaltotft)는 체질량 지수가 50을 넘는 초고도 비만이었다. 이 남성은 보육원 아이들이 줄어들자 시 당국의 해고 대상이 되었다. 그는 비만을 이유로 시 당국이 자신을 차별했다고 의심했다. 노동조합도 "시가 공공부분에서의 차별금지와 동등한 대우 원칙을 지키지 않아 칼토프트가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며 이 남성을 대신해 지방 법원에 부당 해고 소송을 제기했다.
 
비만은 차별금지 대상인가
 
유럽재판소는 첫 번째 질의에 대해서 비만은 고용법상 차별금지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관련법이 비만을 차별금지 대상에 적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로든 차별을 금지하는 인권원칙 관점에서 볼 때 다소 협소한 시각으로 접근한 판단이었다.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 보호에 관한 유럽 협약(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 제14조(차별 금지)는 "성, 인종, 피부색, 언어, 종교,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 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법'도 제2조(정의) 3호에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이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학력, 병력(病歷) 등"이라고 규정함으로써 협약이나 법률에 규정하지 않더라도 비만을 포함시킬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헌법' 제37조 1항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는 관점에서도 그러하다. 
 
비만은 장애로 간주될 수 있는가
 
재판부는 비만이 장애로 간주될 수 있는지를 묻는 두 번째 질의에 비만 자체가 차별금지 대상은 아니지만, 지나친 과체중은 장애로 간주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유럽의 고용법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해고는 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 판단은 '유엔 장애인 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의 '장애인 권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협약은 전문에서 "장애는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충분하고 효과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하는 다양한 장벽과의 상호작용으로부터 기인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장애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기보다 개인이 속한 사회에서 찾는 셈이다.
 
즉 장애는 신체적, 정신적 손상이나 기능을 상실한 사람이 물리적 환경이나 사회적 편견 또는 부정적 시선, 태도로 인해 친구를 만나거나 학교나 직장을 다니고, 문화여가 활동 등을 수행하는 데 부딪히는 장벽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장애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손상을 지닌 개인이 아니라 물리적 환경과 사회 인식 개선이 관건이 되는 것이다. 
 
이상의 관점에서 비만은 장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신체적 민첩성이 요구되는 업무에서 비만이 방해가 된다면 장애일 것이고, 필요한 업무 수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그래서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참여하는 경우에 비만은 장애가 아니다.
 
'통신 장애', '의사소통 장애', '접근 장애'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장애'는 신체적, 정신적 손상이나 기능상실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손상이 아니라 시끄러운 환경, 벽이나 계단 등의 물리적 환경이 장애의 원인이 된다. '외국인 근로자의 안정적인 정착의 장애 요인'이라고 한다면, 관련 제도 부재나 미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부정적인 시선과 태도가 장애 요인이 되는 것이다. 
 
사회적 관점에서 비만인은 물론 외국인 노동자, 비정규직, 결혼이주 여성, 저학력자나 지방대 출신 등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이미 이러한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금지는 법률에서도 규정하고 있다. 누구나 병들거나 노화가 진행되고,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고서도 우리 모두는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김용구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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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