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넬, 당신들 ‘행복했으면 좋겠어’②

입력 : 2018-11-24 오후 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디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서로 다른 시점에 만들어진 기존 곡들을 재편곡한 만큼 넬(NELL)의 새 앨범엔 곡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없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긴 앨범이긴 하나 앨범 수록곡 면면을 살펴보면 아픔과 상처, 슬픔의 정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번 신보에는 ‘희망고문’, ‘헤어지기로 해’, ‘치유’, ‘기억을 걷는 시간’. ‘Dear Genovese’, ‘섬’, ‘Holding onto Gravity’, ‘Home’, ‘Underbar’ 등 총 9곡이 수록됐다. 
 
“(종완)올해 이런, 저런 일들도 많아서 들으면 편안하고 위안이 되는 음악이길 바랐어요. 마음을 후벼파기 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둥글게, 둥글게 편하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던 것 같아요.”
 
“타이틀곡 ‘헤어지기로 해’는 사실 이번 앨범에 실을 곡은 아니었고 다음 정규에 실으려 했던 곡이에요. 제가 느끼기엔 다른 음악과 감정선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요. 그래도 오랜 만에 내는 앨범인 만큼 새로운 곡이 들어가야 할 것 같았어요.”
 
넬의 새 앨범 '행복했으면 좋겠어' 트랙리스트.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100% 어쿠스틱 버전의 편곡은 아니지만 원곡보다 한층 ‘따뜻한 사운드’로 완성됐다. 피아노와 스틸 기타, 어쿠스틱 드럼 등 주로 어쿠스틱 악기의 활용 빈도가 높았다고 밴드는 설명한다.
 
“(종완)해외에서도 ‘Warm Sound’라고 따뜻하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번 앨범은 어레인지부터 어쿠스틱 악기를 쓰면서 그쪽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리고 믹스할 때 요즘 트렌디한 음악보다는 고주파대를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보통 그렇게 하면 시원하고 밝은 느낌이 나는데, 의도적으로 고주파대를 꺾어서 좀 더 둥글, 둥글하게 덜 자극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재경)얘기 듣다 떠오른 건데 물로 따지면 차가운 물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뜨거운데 오래는 못 있잖아요. 적정한 온도에 있으면 오래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사운드도 처음에 자극적이게 하면 시원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오래 듣기는 힘들거든요. 적어도 저희 팀은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평소 밴드는 ‘소리’ 느낌에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는 그보다는 기존 곡들을 ‘따뜻한 사운드’로 재편곡하는 방향성에 중심을 더 크게 뒀다. 
 
“(종완)소리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건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 때 그런 경우가 많아서 이번 앨범에서는 최소화됐어요. 그보다는 기존 곡들을 어떻게 편곡할지 방향성을 미리 잡고 들어갔던 거라 소리에서 영감을 얻는다기 보단 우리가 표현하고자 했던 성향, 재해석하고 싶어하는 생각이 더 많이 반영된 것 같아요. 오히려 우리가 알고 있는 소리에서 어떻게 하면 어쿠스틱 악기로 둥글, 둥글하면서도 따뜻한, 어떻게 보면 심심할 수 있는 소리를 만들 수 있을까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올해 4월 열렸던 넬의 'NELL'S SEASON 2018 '.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이번 앨범은 ‘렛츠 테이크 어 워크(Let’s Take a Walk)’이후 10년 만의 재편곡 앨범으로서도 팬들과 밴드에게 의미가 남다르다. 당시도 밴드는 ‘Good Night’, ‘Stay’, ‘Thank you’ 등 대표곡들을 재편곡한 앨범을 발매했었다. 두 앨범이 각각 시기별 밴드의 활동을 모은 ‘소품집’에 가까운 것 아니냐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종완)맞는 것 같아요. 만들 때 서로에게 얘기했거든요. 우리가 또 열심히 하고 싶은 거 잘 해서 앞으로 10년 후까지 쌓인 곡들로 또 이런 앨범을 낼 수 있다면, 거의 20년의 세월이 세 개 앨범에 들어가 있는 거니까. 음악이기도 하지만 우리 삶이고 추억이거든요. 그런 버전들로 했던 공연들도 기억이 날 거고. ‘소품집’이라고 우리는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때와 지금의 차이라면, 이번 앨범은 공연을 위해서 편곡을 했던 곡들이었어요. 그 공연의 제목도 ‘홈’이었고요. 집 하면 편안한 느낌이 떠오르잖아요. 무대도 그랬었고 그 분위기에 따라, 분명한 방향성에 의해 작업이 된 곡들이에요. 10년 전 앨범은 공연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한번 재해석을 해보자 그렇게 진행했던 것이고요. 10년 전 앨범보다는 조금 더 라이브스러운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재원)올해 초부터 편곡하면서 좋아해준 분들도 많고 서로 서로 기억을 공유하며 추억하기도 하고 했어요.”
 
“(재경)낼까, 말까 저희끼리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차라리 정규 작업으로 들어가서 새 앨범을 내는게 낫지 않겠냐, 했는데 그래도 저희끼리 얘기한 게 추억 같은 느낌인데 남겨 놓지 않으면 지금 느낌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온 앨범입니다.”
 
“(종완)전과 다르게 이번 앨범은 누군가 새로운 분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건 아니에요. 그보다는 원래 우리 공연장을 찾고 우리 음악을 들어주던 팬들을 위한 앨범이에요. 우리 음악을 공유하고픈 느낌으로 만든 앨범이라 추억팔이 같기도 하지만… 근데 추억팔이 하고 싶네요, 진짜. 하하. 사실 그러기(추억하기)가 요즘 너무 힘든 세상이라…”
 
“(재경)남긴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재원)그동안 찍은 사진들 모아서 앨범으로 만드는 것처럼요.” “(종완)앨범에 수록된 사진은 2002년부터 저희와 음악동료이자 친구인 밴드 피아의 심지가 찍은 건데, 앨범 구상할 때부터 그 친구에게 사진 부탁을 했었어요. 전문 사진작가는 아니어도 그 친구가 이 앨범의 한 부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베이스 이정훈(왼쪽부터), 보컬 김종완, 드럼 정재원, 기타 이재경. 사진/스페이스보헤미안
 
항상 밴드는 데드라인까지 새로운 곡을 만들고 밀어내는 식으로 정규 앨범을 완성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이날 내년 상반기 ‘예정’된 정규 앨범의 구체적 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밑그림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정규 6집 ‘Newton’s Apple’ 앨범부터 꿈과 희망 등 스토리 소재의 폭을 넓혀왔던 밴드는 다음 앨범은 오히려 ‘사적인 앨범’이 될 수 있다고 얘기했다.
 
“(종완)6집 때는 캐릭터화 된 인물을 내세워서 포괄적인 얘기를 했던 건 맞아요. ‘헤이븐’이란 곡도 그렇고 ‘Burn’도 그렇고 영화 속 캐릭터를 상상하며 쓴 곡들이었어요. 100% 확실하지는 않지만 다음 앨범은 느낌에.. 그냥 느낌에 개인적이고 사적인 앨범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리도 그런 느낌에 맞추게 되지 않을까 싶고…”
 
“아, 이랬는데 갑자기 막 콘셉트 앨범! 서부 막 이런” 종완의 말에 박장대소하는 멤버들이 말을 더했다. “재밌겠는데?”, “모든 음악을 갑자기 하모니카로…”, “하하하”
 
스페이스보헤미안 사무실 내 작업 공간도 새 앨범 작업에 맞춰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종완)매번 이번 작업 때는 꼭 정리하자 하는데 제대로 안돼요. 이번 앨범 작업도 결국은 지저분한 상태로 끝났네요.” “(재경)이 공간 말고 새로운 창작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는데, 탁 트인 공간이 될 것 같아요. 그런 분위기가 또 앨범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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