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 대해 ‘강경론’을 펼쳐 온 검찰 기조에 변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관계자는 18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전망에 "영장은 수사의 중요한 방식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목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7일 두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청구를 법원이 기각한 뒤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중범죄들의 전모를 규명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서 대단히 부당하다"고 격노했던 것에 비해 서너발 후퇴한 것이다.
법원이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한 지난 7일 오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박병대(오른쪽 61·사법연수원 12기) 전 대법관과 고영한(63·11기) 전 대법관이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고 전 두 대법관은 검찰이 누누이 강조한 바와 같이 '하급자인 임 전 차장'의 '직근 상급자'들이다. 실무책임자인 임 전 차장과 최종 책임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이에 있는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그랬기 때문에 검찰은 법원이 이 두 사람에 대한 영장청구를 기각했을 때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철저한 상하 명령체계에 따른 범죄로서, 큰 권한을 행사한 상급자에게 더 큰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법이고 상식"이라고까지 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이날 "범죄 수사에서 신속성도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것에 못지 않게 우선되는 것은 엄정과 정확성"이라면서 "일부러 천천히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두가지 니즈(needs)를 조화해 수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수사는 내부적 방침이 없다. 교과서적 답변이지만 진실을 규명해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수사다. 그 과정에서 영장이 기각될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이고 거기에 맞춰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라며 “큰틀의 방침은 진실을 규명해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지 날짜대로 진행한다고 해서 수사가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구속영장 기각 이후 두 전 대법관을 비공개로 불러 조사했는지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아직 안 했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연내에 종결하겠다는 최초 목표도 수정됐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의 신병이 확보되면 이들에 대한 조사를 기초로, 이달 중 양 전 대법원장을 불러 조사한 뒤, 영장만료 기일에 맞춰 수사를 일단락 짓거나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적극 검토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두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청구 기각으로 수사에 차질이 생기면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소환조사 시기도 내년으로 넘어갔다. 검찰 관계자는 “연말이 끝나기 전 까지 양 전 대법원장을 불러 조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같이 전개되면서 임 전 차장 윗선은 모두 불구속기소로 가닥이 잡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이 두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한다고 해도 영장 발부를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은 범죄소명이 추가로 가능하겠느냐가 문제다. 두 사람의 영장을 각각 심사한 임명헌·명재권 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들과 임 전 차장에 대한 공모관계 성립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곧 ‘임종헌+박병대·고영한+양승태’의 공모관계를 끊어버린 것이다.
임 부장판사는 지난 7일 박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 심사에서 '범죄혐의 중 상당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관여 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의 성립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명 부장판사도 고 전 대법관에 대해 "본건 범행에서 피의자의 관여 정도 및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서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에 비춰 구속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수장인 전 대법원장과 수장급인 전 대법관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겠느냐는 일각의 정무적 판단까지 고려해보면 이들에 대한 불구속 기소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린다.
수사가 장기간 이어지고, ‘전자법정 입찰비리’ 등 줄기가 다른 사법부 비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검찰이 사법부를 상대로 ‘한풀이’를 하고 있다는 비판은 더 거세지고 있다. 검찰이 ‘사법농단 의혹’ 수사에 묶이면서 1년 가까이 권력층이나 재계비리 수사에 손을 놓고 있는 점이나, 현 정부의 표적수사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비난도 부담이다.
검찰 수사팀 관계자는 이날 “우리 입장에서는 필요한 수사 할 것이다. 두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청구는 책임이 크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법원에서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영장 판사가 지적한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보완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