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혜민 스님도 남의 욕망을 욕망했던 시절이 있었다니.’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의 서두를 읽다 보면 알게 되는 깜짝 사실이다. 미국 햄프셔대 종교학 교수로 7년간 재직했던 시절을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내가 정말로 원해서 선택했다기보다는 주변에서 ‘당연히 그 길을 가겠지’라고 예상한 길로 자연스럽게 걸어간 듯하다.”
남들을 곁눈질하며 따라간 꿈은 꿈이 아니었다. 막상 입성하고 보니 교수 세계는 그의 생각과는 많이도 달랐다. 학생들에게 애정을 쏟는 것 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논문을 빠른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쓰는 것, 외부 연구비를 잘 따오는 것, 선배 교수들 마음에 들게 행동하는 것 등이 더 중요했다. 이후 미국 교수 자리를 그만두기까지의 과정을 그는 ‘막막했던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의 삶을 산다. 남의 욕망을 욕망한다. 그러다 보니 ‘삶의 주도성’이 사라진다. 남들의 시선에 반대할 용기도 없다. 포기란 실패자들의 전형이란 생각에까지 미친다. 자기 자신이 없다. 내가 없다.
저자는 그런 이들에게 하던 일을 잠시 멈춰보라고 권한다. 한 발짝 떨어져 거울처럼 자신을 비춰보라 말한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고요 속 지혜의 힘이 발현되기 마련이다.
스님 역시 교수직을 포기하기 어려웠다. 안정된 삶을 보장해 주는 일을 못 한다고, 할 수 없다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용기 내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요의 시간에서 그는 삶에 다시 생기를 찾았다. 포기 또한 다른 이름의 용기란 사실을 깨닫게 됐다. 교수를 그만 둔 이후 그는 서울과 부산에 ‘마음치유학교’를 짓고 3000여명과 치유와 성장의 시간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다.
삶의 고요한 시간은 주변인들과의 관계나 사랑 또한 돌아보게 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장을 본 기억을 곱씹다 보면 영혼이 따뜻한 등불이 되고, 살아갈 힘이 된다. 누군가로부터 입은 상처나 누군가를 향한 미움 등의 정서는 잘 다스리다 보면 성숙이나 노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스님은 세계적 평화운동가 틱낫한의 가르침을 옆에서 보고 들은 바를 들어 이를 설명한다.
“틱낫한 스승의 법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마음 수행이 깊어질수록 관계의 회복이 가능해진다는 말씀이었다. 진정으로 마음 수행이 잘되고 있다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어긋났던 관계가 수행의 결과로 회복돼야 한다.“
저자가 내리는 ‘마음 돌봄’ 처방은 대체로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일상에 뿌리를 둔다. 그래서인지 그 또한 사람이며 우리와 비슷한 삶의 고민을 한다는 사실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명절 때 형편이 좋은 사촌 집에 가서 질투를 느꼈던 어린 시절, 덕분에 그 힘으로 미국 아이비리그에 가기 위해 스스로 노력했던 청년 시절, 불쑥불쑥 찾아오는 외로움을 마주하고 그 원인을 찾아가는 오늘날 모습까지. 사람으로서 마주치는 고민들을 그의 삶의 여정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주기적인 침묵의 시간으로 행복을 찾아간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현재의 나’에 집중한다. 깊은 잠으로 몸이 원기를 되찾고 마음이 회복되는 것과 마찬가지. 텅 빈 고요한 마음 상태는 과거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소거시키고, 고민을 단순화시킨다. 그 과정에서 존재는 회복되고 새로운 나가 발견된다.
명나라 진계유의 시를 읊으며 그는 침묵을 권하고 정리한다. ‘고요히 앉아보고 나니 평소의 내 기운이 들떠 있었음을 알았네/ 침묵을 지켜보고 나니 일상의 내 말들이 시끄러웠음을 알았네/ 지난 일을 살펴보고 나니 한가로이 내 시간을 낭비했음을 알았네’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사진/수오서재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