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미국 워싱턴 인근에서 플로어타임 학회가 4일간 열렸다. 학회에 다녀온 선생님으로부터 보고를 받으며 스티븐 쇼어 선생을 만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벽을 넘어서-행복을 찾은 어느 자폐인의 이야기>” 라는 책의 저자로 국내에서도 번역돼 소개된 바가 있다. 현재 자폐인 전문학교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재직중인데, 미국에서는 정상생활을 하는 자폐인으로 유명하다.
그 선생님은 스티븐 쇼어와 장시간 대화를 나눈 후 자폐인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고 했다. “완전 정상 이었어요. 그가 중증 장애였다고는 전혀 의심을 할 수 없는 상태였어요. 자폐가 치료 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정상생활을 하는 성인을 보니 놀랍더군요.”
“Beyond the Wall(벽을 넘어서)”을 보면 스티븐은 정상 생활을 하지만 여전히 미세한 사람들의 감정 변화를 캐치하는 것에는 미숙하다고 고백을 한다. 사람들의 감정의 이면을 다 능숙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는 일부 자폐의 흔적만 있을 뿐 완전 정상이라 할 수 있다.
자폐인 중에 정상인으로 호전돼 살아가는 사례는 매우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학은 자폐증을 못 고치는 병이라고 말한다. 왜 이렇게 단정적으로 표현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뇌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념이 아직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에서도 뇌가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뇌도 변한다는 뇌가소성이론이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이제 뇌의 변화를 믿기는 하지만 자폐스펙트럼 장애에서 뇌가 변할 것이라는 증거를 아직 찾지 못했기에 과거습관의 연장처럼 불치론이 통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뇌 신경질환 중에 뇌의 가소성이 아주 역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다양한 방식으로 확인되고 있다.
자폐와 아주 유사한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소아신경질환이 ADHD다. 최근 ADHD 연구에 의하면 적절한 약물을 6개월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대뇌피질 중 전두엽의 두께가 두꺼워지며 ADHD 증상이 호전될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몇 개월 사이에도 뇌 피질의 두께가 바뀔 정도의 역동적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뇌성마비와 같이 비가역적인 뇌손상이 원인이 되는 질환이 있다. 그러나 ADHD처럼 자폐증은 뇌의 변화가 역동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뇌신경질환의 일종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경로로 정상인으로 호전된 사례가 보고되는 것이다.
자폐인으로 호전된 이후 <나를 똑바로 봐>라는 책을 쓴 존 엘더 로빈슨은 자신의 책에서 명확히 말하고 있다. 자신의 청소년기와 20대를 거치면서도 지속적으로 뇌신경이 좋아져서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이 점점 정상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감정리딩 능력에서 정상인에 근접한 것을 느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대뇌의 변화가 자폐적인 뇌에서 정상적인 뇌로 변화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직 현대 과학이 진정으로 모르는 것은 자폐인의 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어떻게 병적으로 망가졌는지를 모르니 치료여부를 판단할 과학적인 근거도 가지지 못한다.
자폐를 ‘불치’라고 표현하는 것은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다. 과학을 빙자한 미신일 뿐이다. 가장 합리적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과학과 현대의학은 자폐가 치료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판단조차 못하고 있다.”
따라서 섣부르게 자폐증 불치론을 주장하며 환자와 보호자에게서 희망의 싹을 잘라서는 안 될 것이다.
◇ 김문주 아이토마토한의원 대표원장
- 연세대학교 생명공학 졸업
- 가천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 (현)한의학 발전을 위한 열린포럼 운영위원
- (현)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
- (현)플로어타임센터 자문의
- (전)한의사협회 보험약무이사
- (전)한의사협회 보험위원
- (전)자연인 한의원 대표원장
- (전)토마토아동발달연구소 자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