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로커빌리에 담긴 '을지로 감성', 스트릿건즈

"요즘의 레트로 감성 반가워요" 엘비스 좇던 청춘들, 세계에 닿다
정규 2집 '더 세컨드 불릿' 발매 기념 인터뷰①

입력 : 2019-06-21 오후 6:05:2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머리를 말아올린 엘비스 프레슬리가 튀어 나와 키스를 건넬 것만 같았다. 이질감이라곤 전혀 없을 풍경이었다.
 
18일 저녁 6시,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실리빌리. 문을 젖히고 들어서니 '로커빌리(로큰롤 음악 초기 스타일의 하나로, 로큰롤과 컨트리송이 결합된 음악과 문화를 일컫는 조어)' 물결이 요동치는 1950년대 미국이 펼쳐졌다. 미드센추리 모던 양식의 컬러 배색과 벽 곳곳에 걸린 검정 가죽 재킷,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아날로그 질감의 흑백 TV 영상…. 
 
존 트라볼타 주연의 영화 '그리스' 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 눈이 앞뒤로 네개씩 달린 인형에 익숙해질 무렵, 엘비스처럼 머리를 넘긴 이들이 들어왔다. 실리빌리 안 개성 넘치는 아티스트들에게 서슴없이 활기찬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저희 이번 주 공연하는데, 보러 오실래요?"
 
최근 청춘들 사이 부상하는 로커빌리 문화는 밴드 스트릿건즈<타이거(기타), 철수(보컬·탬버린·하모니카), 로이(업라이트베이스), 뀨뀨(리드기타), 인선(드럼)>에게 반가운 일이다. 50년대 미국풍 어패럴, 액세서리, 인테리어 소품, 타투 등을 만들어 파는 이 곳 아티스트들과도 작년부터 교류를 이어왔다.
 
"저희가 오래 전부터 해온 음악이 로커빌리 기반이예요. 로커빌리는 단순히 하나의 음악 장르라기보다는 연관된 서브컬쳐가 있어요. 타투나 패션, 헤어, 자동차 커스텀…. 여러가지요. 요즘은 이런 문화들이 '레트로'라는 말로 다시 활성화되는 것 같아 반가워요."(타이거)
 
실리빌리 아트스트와 스트릿건즈.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의 전신은 2000년대에 활동하던 락타이거즈다.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미국풍 반항아 콘셉트. 가죽재킷과 선글라스, 말아올린 리젠트 헤어는 그 시절 더 강렬했다. 
 
"그때는 음악도 펑크록 쪽에 가까워서 지금보다 스타일이 강했어요. 완전히 라이더 같은 이미지였죠."(로이) "지금보다 머리도 더 빳빳했거든요. 중학생들은 김무스 지나간다고 놀렸어요."(타이거) "옷 살 수 있는데도 없어서 미국에서 직구해서 입고 그랬어요."(로이)
 
타이거와 로이는 2013년까지 락타이거즈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그 해 중순 밴드가 해체 수순을 밟으면서 철수를 영입했다. 2년 뒤 뀨뀨, 지난해 인선이 추가로 들어오면서 지금의 진영이 갖춰졌다. 
 
길과 총. 밴드명에는 거친 이미지의 두 단어를 아로 새겼다. 
 
"자유롭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이미지가 저희들한테 가까웠던 것 같아요. 요즘은 대학가서 음악을 배우시는 분들도 많지만, 저희는 그냥 길거리에서 아는 형들한테 배우곤 했거든요."(타이거) "길이란 이미지에, 거칠고 불량한 이미지도 넣고 싶었던 것 같아요. 건즈앤로지스처럼요."(로이)
 
실제로 타이거와 로이, 철수는 음악 비전공자고 뀨뀨, 인선은 전공자다. "형들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박자를 찍어낼 때가 있어요. 그런 노하우나 감각들은 학교에선 가르쳐주지 않아요."(뀨뀨) "저희가 막힐 때는 이론적으로 설명해줘요. 서로가 균형을 잡아주는 보완적 관계인 것 같아요."(타이거)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홍대의 문화복합공간 실리빌리에서 만난 스트릿건즈. 멤버들이 로커빌리 패션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새 밴드를 꾸린 초기, 밴드는 로커빌리의 역사적 줄기를 따르려 했다. "당시 일본의 한 로커빌리 페스티벌에 출연했을 때, 컬쳐 쇼크를 받았던 기억이 나요. 로커빌리는 미국에서 50년대에 유행하던 장르인데, 그걸 현대적으로 새롭게 가져온 팀들이 많았거든요. 이후로 앨비스 프레슬리, 조니 캐시 같은 50년대 오리지널 팀부터 80년대 리바이벌을 이끈 스트레이 캣츠까지, 많은 팀들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타이거)
 
"그때 저는 일렉 베이스를 가져갔는데, 모두 재즈에서 쓰는 업라이트베이스를 가져와서 손으로 뜯더라고요. 그 후로 한국에 와서 영상을 보며 독학을 했어요. 국내에서 업라이트베이스에 슬래핑 주법(손으로 뜯는 주법)을 처음 쓴 건 제가 최초일 거예요."(로이)
 
2015년 첫 앨범 '오디너리 밴드(Ordinary Band)'를 낸 이후로는 굳이 로커빌리란 틀에 얽매이진 않는다. 싱글 '꽃이 져서야 봄인 줄 알았네'부터 밴드는 메시지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세상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른이 많은 나이였던 시절을 돌아보고('꽃이 져서야 봄인 줄 알았네'), 황량한 냉장고 소주 몇병을 보며 어머니의 깊숙한 한숨을 느낀다.('냉장고를 부탁해')
 
지난 날을 돌이켜 삶을 깨닫는다. 우리네 정서가 묻어 있다.
 
"로커빌리에선 늘 다루는 용어와 인물이 있어요. 술과 뱀, 불과 미녀, 캐딜락…. 그런 것들을 꼭 담아냈죠. 근데 언제부턴가 그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사에 주력하고 있어요."(타이거)
 
"사운드적으로도 로커빌리 색이 너무 진해서 오히려 요즘은 조금 빼려는 시도들을 하는 중이예요. 로커빌리 틀을 벗어나긴 힘들겠지만, 듣는 사람들이 최대한 이질감 없게 모던한 느낌을 내려고 해요."(철수)
 
올해 2월 미국 음악잡지 '스핀'은 한국의 '스트래이 캣츠(Stray Cats)'라며 스트릿건즈를 호평했다. 사진/타이거레코드
 
변화한 음악은 세계에 먼저 닿았다. 지난 2017년 글로벌 밴드경연대회 '하드록라이징 (Hard Rock Rising)'에서 최종 우승자로 선정됐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밴드 1만여 팀 중 1위. 동양인 최초로 기록을 썼다. 
 
"일단 외국에선 로커빌리란 장르를 쿨하고 멋지게 인식하는 것 같더라고요. 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인정해주기도 하고요."(타이거) "또 외국에선 컨츄리의 편안한 느낌이 로커빌리라는 인식인데, 동양에서 온 애들이 땀 뻘뻘 흘리면서 연주하니까 신기하게 본 것도 있었던 것 같아요."(로이) "당시 심사평이 '로커빌리라는 장르를 어떤 장르보다 대중적으로 잘하고 있다' 였어요. 뿌듯했죠."(타이거)
 
변화해가는 음악을 그들은 '한국적 로커빌리'라 했다. "예전에는 '우린 로커빌리 음악이니까, 당연히 로커빌리 스타일을 해야해'라는 게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음악 자체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가사도 미국식보다는 한국식 감성으로 쓰고요. 그게 주류 로커빌리 문법과 다른, 저희들 만의 로커빌리예요. 그래도 모르시겠다고요? '을지로 감성'이라고 생각해주세요."(타이거)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권익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