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기자)"관찰, 통찰, 성찰…글쓰기는 인생 그 자체"

'노무현 필사 막내'가 전하는 글과 인생…출퇴근 중 기록한 100편의 글들

입력 : 2019-06-28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하는 기념석에 담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지금도 군사분계선 앞에 놓여 있는 이 비석의 문구는 원래 이랬다. '평화로 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
 
당시 첫 문구를 제안한 이는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출신인 장훈 인천시 미디어담당관(49)이다. 그는 당시 보고를 올렸다가 며칠 후 부속실로부터 '조금 손 본 문구'로 확정됐다는 이야기를 건네 들었다.
 
'평화로 가는 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미 간 길이었고, 다지고 다져야 하는 일은 노 전 대통령의 몫이었다. 그가 놓친 건 글에 담겨야 할 시대적 '통찰'이었다.
 
장훈 인천시 미디어담당관이 신간 '어쩌다 공무원 어쩌다 글쓰기'를 펴냈다.
 
장 담당관은 강원국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과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등과 함께 대통령의 연설문을 써왔던 '노무현 필사' 중 막내다. 2002년 국제정치 박사과정을 밟다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 연설 비서로 들어갔고, 이듬해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이 됐다.
 
2년쯤으로 생각했던 청와대 생활은 연설비서관실, 여론조사비서관실 등을 거치며 참여정부 시절 내내 이어졌다. 이후 충남도 미디어센터장과 인천시 미디어담당관으로 활동하며 '어공(어쩌다 공무원)' 생활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중앙 행정과 도 행정, 도시 행정을 두루 경험한 그는 이 책에서 글과 생 전반에 관한 여러 단상들을 풀어낸다. 일산에서 인천까지 출퇴근하며 스마트폰에 기록한 100편의 글들이 책으로 엮였다.
 
공직생활을 하며 배운 '소통하는 글쓰기'가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청와대 시절 각종 홍보문구와 원고 제작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이다. 특히 2004년 "'관찰'과 '통찰'이 글쓰기에 중요한 것 같다"던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기는 그의 글쓰기 인생에 아직도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다.
 
저자는 주변의 모든 것들에서 글의 영감을 채집한다. 눈을 감은 지하철 군중을 보며 빠른 월요일 시계를 그리고, 출근 시간 반사적 뜀뛰기에서 결핍과 불확실로 가득한 시대적 잔상을 읽는다. 관찰의 핵심 '낯설게 보기'는 그의 주된 글감이다.
 
"늘 걷던 보도블록 사이로 피어오르는 풀꽃의 생명력, 매일 나누던 사람들과의 인사 속에서 새삼 느껴지는 관계의 행복을 보는 것. 그것이 바로 관찰의 힘일 것이다. 잘 관찰할 수 있다면 삶의 모든 것이 글이다."
 
관찰의 결과들을 바른 가치관과 틀로 묶어 볼 줄 안다면 글에 '통찰'이 담긴다. 핵심은 자의적으로 나누고 묶는 것이 아닌, 통시적이고 동시적 관점을 녹여내는 것이다. 서두에 설명한 기념비 문구 외에 노 전 대통령의 재임 시 업무 일지 등을 들며 그는 글의 통찰적 중요성을 강조한다.
 
관찰과 통찰을 기르는 힘을 그는 성찰에서 본다. 성찰은 특정 대상에 관한 것이 아닌, 스스로에 관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솔직히 볼 때 그는 세상을 보는 좋은 틀이 마련된다고 믿는다. "우리고 우려 나온 육수처럼 글의 깊이감도 깊어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세 개의 살필 '찰(察)'을 고루 강조하는 책은 비단 공직 생활과 글쓰기에만 범위를 한정 짓진 않는다. 만화방 주인이었던 어린 시절 꿈과 복지사와 발달장애 아이 간 대화, 충남도 근무 시절 느낀 주민들의 여유를 관조적으로 훑어 간다. "세상의 변화가 솔직함과 겸손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깨달음이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들로 새겨져 있다.
 
책 출간은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에 맞췄다. "후보시절 좋아하던 그림이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 큰 물고기의 형상을 이룬 모습이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작은 기억이 모여 큰 그림으로 형상화되고 더 큰 그리움과 추모로 퍼져 가기를 희망해 본다."
 
'어쩌다 공무원 어쩌다 글쓰기'. 사진/젤리판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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