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일 기술전쟁, 우리가 놓쳤던 것을 마주하기

입력 : 2019-07-12 오전 6:00:00
역시 아베는 트럼프의 그늘에서 못 벗어나나 보다. 무역 제재 수단을 동원한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를 자기도 써보고 싶었나 보다. 반도체 굴기를 꿈꾸는 중국의 꿈을 좌절시키기 위해 트럼프는 작년 말에 미국 반도체 제조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시켰다. 반 년이 지나 7월1일 아베 정부는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투명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불화수소(에칭 가스)의 세 가지 품목에 대한 포괄적 수출 허가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일본 정부는 "한일 간의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들 품목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에 사용되는 주요 소재로 우리나라는 거의 전적으로 일본에서 수입해왔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2019년 1월~5월 기준) 국내 기업이 수입한 품목별 일본산 비중은 포토 레지스트 91.9%(1억 352만 달러), 투명 폴리이미드 93.7%%(1214만 달러), 에칭 가스 43.9%(2843만 달러)이다. 이들 품목의 수입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한국은 반도체 생산과 수출에 차질을 빚게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반도체 메모리는 전 세계 판매량의 70%를 차지한다. 작년 반도체 수출액은 1267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했다. 일본은 3억 달러 정도의 소재 수출 손실을 보더라도 한국의 1300억 달러 반도체 수출에 차질을 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즉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약점을 건드려 전체 한국 경제를 휘청거리게 하겠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이 메모리에서 거머쥔 패권을 비메모리 분야로 확대하려는 계획에 차질을 주려는 정밀타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업계는 수입선 다변화, 국내 생산설비 확충, 기술개발을 통한 국산화를 추진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으나, 워낙 특수한 기술 분야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부품소재 산업의 취약성은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반도체 산업의 약점이 장기간 노출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내 반도체 장비 산업의 국산화율은 18.2%에 불과한데도 그동안 반도체 장비나 소재를 개발하자고 하면 반도체 소자업체에선 시장논리를 갖고, 즉 글로벌 분업 밸류체인에서 싸고 안정적으로 구매(수입)할 수 있다며 장비업체 기술개발을 매몰차게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불만이 있어 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소자업체들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낼 때, 국내 82개 반도체 장비업체 중 13곳이 적자를 봤다. 작년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평균 39.1%였으나, 같은 기간 반도체 장비업체는 13.5%에 그쳤다. 반도체 산업 생태계의 기형적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정부의 반도체 연구개발(R&D) 지원금 감소도 한 몫을 했다. 2009년에 1003억원에 달하던 지원금이 2017년에는 314억원으로 3분에 1 토막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일본이 우리 반도체 산업의 약점을 공격한 것이다. 
 
이외에도 에너지나 여러 산업 정책이 평화로운 시장 상황만을 가정한 채 비상시엔 어떻게 한다는 대비책을 세워놓지 않고 있는 문제점이 이번 기회에 큰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몇 년 전에 정부 R&D에서 인공지능 단어가 들어간 과제는 예산을 받기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 그래서 모 출연연은 대신 '스마트'라는 용어를 썼다고 한다. 그러다 알파고 후폭풍을 맞았고, 이전 정부는 부리나케 인공지능연구소를 만드는 해프닝을 벌였다. 더 이상 관료의 어설픈 지식으로 과학기술계를 통제하는 구조도 극복해야 한다. 
 
미중, 한일 무역규제의 본질은 기술패권 전쟁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의 시기에 앞선 기술은 전략적 무기가 될 수 있다. 산업혁명에 뒤쳐진 중국과 조선이 태평양을 건너온 함선 대포에 무너졌다.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기에는 급격한 기술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를 괴롭힐 도구, 기술, 제품을 갖지 못하도록 준비하는 국가 전략, 특히 과학기술 전략이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는 전략적 사고를 하는 과학기술 전문집단이 준비되어 있는가?
 
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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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