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톰 코번은 정부지출을 줄이겠다는 목표로 <낭비책>을 펴냈다. 그 책의 2012년 목록엔 '초파리의 사랑은 덧없다'라는 항목이 있고, 초파리 수컷의 노화와 성적·사회적 활동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예산낭비로 지목됐다. 2013년 권위 있는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된 플레쳐 연구팀의 논문은, 초파리 유전학을 이용해 노화와 감각기관의 보상 사이의 관계를 밝힌 중요한 연구로 인정받았다. 2012년이면 이미 초파리 연구가 몇 번의 노벨상을 수상한 후였는데, 코번에겐 공화당의 이념이 과학적 의미보다 중요했다.
기초과학이 발전한 미국에서도, 기초과학은 언제나 정치인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과학에 대한 무지와 반과학적 정책을 남발하는데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구분도 없다. 민주당 상원의원이던 윌리엄 프록스마이어는 1976년부터 1988년까지 '황금양털상'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세금이 낭비된 과학연구를 비난했다. 이 상은 악명이 자자했는데, 황금양털상이 수여된 연구는 사망신고를 받은것과 마찬가지였고, 그가 상을 수여한 약 150여개의 연구들은 대부분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야 했다. 프록스마이어라는 인물은 청렴했다. 그는 예산감시 활동에서 다양한 노력을 했고, 스스로도 해외여행시 정부 돈을 쓰지 않는 등의 근검한 행동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 청렴성이 그의 반과학적인 정책남발을 막지는 못했다. 그가 황금양털상을 제정한 배후에는, 당시 베트남전 등으로 국민들 사이에서 커져가던 과학의 순수성에 대한 의심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던 목적이 있다. 프록스마이어는 외계지적생명체탐사(SETI)에 황금양털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정치인의 대부분은 과학에 무지하다. 그건 과학자 출신 정치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치인 대부분이 과학의 가치에 대해 공부해보지 못한 평균적인 시민에 다름 없기 때문이다. 특히 법률가가 많은 한국과 미국의 의회에서, 정치인들은 과학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관심을 가진다 해도 과학의 응용적 측면에만 편향되는 경향이 있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정치인 뿐 아니라 사회의 평균적인 시민들도, 과학이 민주사회에서 지니는 가치에 대해 제대로 논평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실제로 기초과학은 도박과 같은 측면을 지닌 학문이다. 만약 기초과학을 경제적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기초과학이 지닌 그런 도박적적 측면조차 없는 것보다는 낫다.
'황금거위상'은 그런 의도에서 제정되었다. 경제적 시각에서만 바라보면 쓸데 없어 보이는 기초과학연구들 중에서, 엉뚱해 보이지만 인류에게 큰 선물을 안겨준 연구를 선정해 수여한다. 짐 쿠퍼 하원의원의 제안으로 미국과학진흥협회가 2012년부터 매년 수여하고 있는 이 상은, 기초과학 연구가 지닌 불확실성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노력이다. 2012년엔 훗날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형광단백질 GFP을 발견한 연구진이 수상했고, 2019년엔 개구리 피부조직을 이용해 콜레라균의 침투경로를 밝힌 연구 등이 수상했다. 황금거위상은 기초과학연구자를 독려하는 좋은 의미의 상이지만, 그 말이 곧 기초과학 연구가 모두 좋은 의도를 지녔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약 우리가 황금거위를 낳기 위해서만 기초과학에 지원한다면, 기대보다 실망이 더 클 수도 있다. 기초과학은 도박이다.
과학계엔 '이그노벨상'이라는 상도 있다. 하버드 대학의 유머과학잡지가 선정해서 노벨상 시즌 1~2주 전에 수여하는 이 상은, "반복할 수 없거나, 반복해서도 안되는" 과학연구에 주어지는데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 중 여럿이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심사위원 중에도 노벨상 수상자가 섞여 있다. 이그노벨상은 기초과학연구가 지닌 속성을 엿볼 수 있는 대회다. 기초과학연구는, 하나의 가치로 평가하기 힘든 복잡한 학문적 성과물이다. 특히, 국가가 지원하는 기초과학연구는, 과학자 개인의 호기심이라는 무한한 자유와, 국민의 생활에 기여해야 한다는 무한한 책임 사이의 영원한 줄타기인지 모른다.
과학기술인 대다수의 기대를 받으며 과학기술정통부 장관이 임명됐다. 그는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여러차례 강조했으며, "기초과학은 인류의 지식을 확장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가치를 지닌 분야"임을 말했다. 그 철학을 존중한다. 현장의 기초과학자들은 지쳤다. 현장을 이해하는 과학계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Woo.Jae.Kim@uottawa.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