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대중화라는 숭고한 목표에 반발하긴 어렵다. 과학을 대중에게 쉽게 소개하겠다는 목표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과학대중화가 한국 과학계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는지, 혹은 한국 사회를 과학적으로 진보시켰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의 과학대중화가 추구하는 목표와 실천의 방식이, 실제 과학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방향을 겨누지 않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 장관 유영민은, '장관이 끝나고 나면 과학기술 대중화 장관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과학기술대중화는 "과학을 국민에게 쉽게 알리기 위해 같이 나서자. 혼자 재롱떠는 것보다 같이 떨자. 조만간 과기정통부 간부들이 전국 다니며 망가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과학은 허세라며 노래 부르고 춤추는 유튜버의 활동을 과학대중화로 여긴다. 과학행정가의 역할은 유튜버가 아니다.
과학대중화는 시작부터 어용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성장을 지상 목표로 내걸고, 시민을 조국근대화의 역군이자 산업 전사로 내몰았다. 과학은 이 과정에 핵심적인 도구로 사용되었다. 근대화된 조국의 시민은 과학화된 시민이어야 했고, 이를 위해 정부는 시민을 계몽해야 했다. 과학대중화 정책이 독재정권과 군사정권 아래서 더욱 광범위하게 펼쳐진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한국의 반민주세력은 과학대중화라는 구호를 통해 시민을 개조했고, 이를 통해 정권을 유지했다.
위로부터의 과학대중화가 지닌 한계는 명확하다. 1973년 박정희는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을 내세웠지만, 45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엔 세계에 내놓을 만한 과학적 발견이 없다.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박정희식 과학정책과 과학대중화 운동은, 한국 과학자사회를 정권에 충성하는 중인집단으로 변질시켰고, 그런 문화 속에서 창의적인 과학연구보다는 생존형 과학연구가 번성했다. 당장 화폐에 넣을 과학자가 한 명 없는데도, 각종 박물관, 과학관에선 대중과학을 빙자한 인문학 혹은 예술 강연이 열리고, 연구기관이 없어 귀국을 꿈꾸지 못하는 이공계 연구자가 그렇게 많은데도, 정부는 국민세금으로 어린이과학관을 늘리는 현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잔재가, 정치적 불안정성의 기원이라고들 한다. 과학운동의 역사에도 비슷한 잔재가 있다. 임종태는 1930년대 김용관의 발명학회가 펼친 과학운동을 연구했다. 김용관은 민족주의 좌파로 분류되는 독립운동가로, 경성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일본의 빠른 성장이 과학기술의 발전 때문임을 깨닫고, 그는 현득영 등과 함께 발명학회를 설립한다. 김용관의 최종목표는 조선에 일본처럼 독립된 이화학연구기관을 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사회명사들의 지지가 필요했다.
현상윤 등의 사회명사들은 과학을 사회문화 전반의 합리화라는 문화적 맥락으로 파악했다. 그들은 애국계몽운동의 맥락에서 과학을 사고했고, 선진국의 과학문물을 소개하는 과학대중화 정도가 식민지 조선에 적합하다고 여겼다. 김용관이 이화학연구소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자, 그들은 냉소했다. 사회명사들은 서구나 일본의 과학도 중립, 보편적이므로 그들의 과학을 조선의 문화 향상에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용관은 조선의 실정에 맞는 소규모 발명과 조선적 과학기술진흥론을 전개했다. 발명학회의 과학운동은 점차 친일적 정치이념에 봉사하게 되고, 김용관은 투옥되었다가 중학교 교사로 은거한다. 김용관이 이탈하자, 과학대중화에 매몰된 발명학회는 친일화되어 과학보급협회로 통폐합된다. 이화학연구소를 통해 과학적 독립을 이루려던 김용관의 꿈은, 과학대중화를 내세운 친일파 공업엘리트와 사회명사들에 의해 좌절됐다.
최근 과학동호회로 퇴색해가는 한 단체를 탈퇴했다. 그 곳엔 과학대중화라는 달콤한 독약이 퍼지고 있었다. 김용관이 지금 태어났다면, 급진적인 방식으로 과학기술인을 정치화시킬 것이다. 한가한 과학대중화 대신, 과학기술인을 조직화해 사회를 더 건강하고 합리적으로 만들 제도를 구축하고, 독립적인 연구기관을 설립해 과학기술인을 양성할 것이다. 김용관의 말로 마무리하고 싶다. 우리에겐 그의 꿈이 필요하다.
“과학의 연구는 전혀 타족에만 뺏기고 그 성과만을 조선에 이식하자는 주장은 목전에 경제적 타산에 몰두하고 민족적 조건을 잊은 분의 말이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Woo.Jae.Kim@uottawa.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