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배당하도록 실무 담당자에게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법원행정처의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17일 열린 심 전 원장 등의 속행 공판에서 검찰이 공개한 조서를 보면 심 전 원장은 "법원행정처 요청을 지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심 전 원장은 지난 2015년 12월 서울고법으로 넘어온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행정소송 항소심을 특정 재판부에 배당하도록 부당하게 지시하는 등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기소됐다.
지난 2016년 10월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심상철 서울고법원장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 조서에 따르면 심 전 장은 해당 사건의 기록이 넘어오지 않은 시점에 갑작스럽게 집무실을 방문한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이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후 심 전 원장은 실무 담당자인 행정과장에게 행정처 요청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심 전 원장은 "사건 배당의 주관자는 각급 법원이므로 행정처의 요청이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 "그러나 행정 총괄 기관이 요청하는데, 일선 법원이 거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가능하면 그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행정처의 요청에 대해선 "지시에 가까운 요청이었다"고 설명했다.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 7월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에 대한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실제 해당 사건은 행정처가 요청한 재판부에 배당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심 전 원장은 검찰에서 당시 행정과장에게 재판부 간 불균형을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예규에 따른 '특례 배당'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은 해당 사건에 특례 배당 방식이 적용되지 않았고, 무작위로 배당되는 일반 사건과 달리 미리 사건번호가 부여된 과정을 확인했다.
이에 대해 심 전 원장은 검찰 수사에서 "지시와 다르게 배당된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고, 사건번호를 미리 뗀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며 "무리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배당하도록 지시한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이 검찰 조사에서 "법원행정처 요청을 지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사진은 서울고법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