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경련제는 치료제가 아니다
. 단순 억제재로 치료적인 효능보다는 생활에서의 편리함과 안전함을 목적으로 경련만 억제하기 위해 투약하는 것이다
. 또한 항경련제는 부작용이 심각하게 많이 동반되는 약이다
. 뇌신경계 진정작용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기억감퇴
, 우울장애 등을 동반해 장기 또는 과다복용 시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다
. 그러므로 항경련제를 복용하려면 그 환자한테 득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엄격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
임상현장에서 보면 양방 의사들은 항경련제의 장점을 이야기 하고, 한의사들은 부작용을 강조하며 진료한다. 일방은 무조건적인 복용을 강조하고 일방은 무조건적인 중지를 이야기하여 환자들에게 혼선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환자의 이익을 중심에 놓고 득실을 따져 판단한다면 혼선이 일어날 일이 없다. 경련으로 인한 일상생활에서의 지장이 항경련제로 인한 부작용 보다 더 크다면 항경련제를 복용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역으로 일상생활에서 지장이 심하지 않다면 항경련제의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심해지기에 복용할 이유가 없다. 이 두 가지 득실을 따져서 환자에게 최적의 진료지침을 주는 것이 의사가 해야 될 일이다. 무조건 먹으라거나 무조건 먹지 말라는 지침은 의사의 자기만족을 위한인 지침인 듯하다.
예를 들어 보자. 얼마 전 60세 초반으로 퇴직한 남자 환자가 왔다. 30년째 경련을 반복하였는데 정도가 미약하여 1년에 한 번 정도 수면 중 1분가량 대발작을 했다고 한다. 수면 중에만 간헐적으로 경련이 나타나니 환자는 항경련제 복용 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은퇴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퇴직 후 노년기에 병이 있는 것이 우려가 되어 치료를 결심하고 항경련제를 처방받아 복용을 시작했다고 한다.
약을 먹기 시작하며 경련은 없었지만 깜빡하고 항경련제 복용을 멈춘 날은 바로 경련이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현재는 2년 정도 지나자 건망증에 시달리기 시작했으며 뭔가 이야기가 어눌한 느낌이 들어 치매가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주변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고 한다. 환자는 양방치료에 회의가 들어 한방 치료를 찾았다고 했다.
30년간 아무런 문제없이 생활하다가 60이 넘어 퇴직한 직후의 환자에게 항경련제를 복용시킬 이유는 아무리 봐도 없다. 환자가 느끼는 두려움이나 걱정은 기우이니 의사라면 오히려 안심시켜 주고 항경련제 복용없이 잘 관리할 것을 권고해야 옳을 것이다. 불필요한 약복용으로 이득은 없고 오히려 부작용으로 건망증과 생활의 불편이 더욱 가중된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라믹탈을 먹으면서 경련 없이 잘 유지되던 30대 여성이 있었다. 여성은 10대 후반부터 장기간 항경련제를 복용하며 경련 억제가 유지되었지만 약을 끊기만 하면 재발되기를 반복하였다. 이런 상태로는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공포감에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한방 치료를 찾았다고 했다. 앞서 진행했던 한방 치료를 통해서 한의사는 항경련제의 심각한 부작용을 알려주며 항경련제 복용을 중지할 것을 설득했다고 한다. 한의사말대로 항경련제 복용을 중지하고 1년여 한약치료를 진행하였지만 반복되는 경련 조절에는 실패해 낮에도 경련이 반복된다고 한다.
이후 필자에게 다른 방식의 한방치료를 요청하여 진료하게 되었다. 뇌파 상태와 증세를 상세히 들어 보니 부분 간질 증세가 명확해 한방 치료만으로 경련 조절이 어려운 난치성 질환이었다. 또한 환자는 젊은 나이로 새로운 직장 생활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경우는 항경련제를 복용해서라도 직장에서의 생활을 안정되게 해주는 것이 환자에게 득이 된다. 필자는 한방치료를 하기 보다는 항경련제를 재차 성실하게 복용할 것을 권했다. 무조건 부작용을 피하려다 환자의 생활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의학적인 접근법의 장점과 단점을 이해하여 환자에게 최상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 일 것이다.
◇ 김문주 아이토마토한의원 대표원장
- 연세대학교 생명공학 졸업
- 가천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 (현)한의학 발전을 위한 열린포럼 운영위원
- (현)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
- (현)플로어타임센터 자문의
- (전)한의사협회 보험약무이사
- (전)한의사협회 보험위원
- (전)자연인 한의원 대표원장
- (전)토마토아동발달연구소 자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