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정비사업 조합의 자의적 조치에 건설업계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조합이 수천억원대의 입찰 보증금을 몰수하거나 시공사 교체를 감행하는 등 건설사를 상대로 물리적 압박을 가하면서 건설업계는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금전적 피해까지 호소하는 상황이다. 정부 규제로 정비사업 일감은 줄어드는데 조합과의 갈등도 심해 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건설사들은 정비사업 조합의 막무가내 운영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산업이 불황인데 조합마저도 건설사에 강경한 태도로 나오고 있다”라며 “조합의 갑질이 심해지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조합이 무리한 사항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업계가 이처럼 하소연하는 건 조합의 자의적 운영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재건축 사업에서는 법원이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인정하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는데도 조합은 지난달 대의원회를 열어 현산의 시공사 지위를 취소했다. 조합은 이달 중 총회에서 취소 안건을 표결에 부치고 새 시공사 물색에 나설 예정이다.
건설사가 입찰에 참여하면서 조합에 내는 입찰 보증금도 액수가 예전보다 올라 업계 부담이 커졌다. 2~3년전만 해도 최대 100억원 수준이던 입찰 보증금은 최근 1000억원대를 웃돈다. 건설사 한 분기의 영업이익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입찰에 참여하는 건설사로선 떼일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건설은 갈현1구역에 입찰하면서 보증금 1000억원을 제출했는데, 조합과 갈등을 빚으며 입찰 보증금 몰수 위기에 직면했다. 이 금액은 현대건설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인 6895억원의 14.5%에 달한다. 현대건설은 조합 조치에 조합원 전체 의견이 반영된 것인지 의문이고 제대로 된 소명 기회도 없었다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한 상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높은 입찰 보증금은 원래 대형 시공사가 들어오길 바라는 조합이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견사의 입찰을 견제하려는 목적”이라면서 “최근에는 다수 조합이 높은 액수를 담보로 잡아 건설사를 통제하려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업계는 입찰 전 건설사가 참여하는 현장설명회에서 고액의 현금을 납부해야 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거나 정비사업의 인허가가 늦어진다는 이유로 시공사 교체를 추진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사들은 사후 대책을 내놓으며 대응하고 있지만 개별 기업이 조합의 무리한 운영에 사전에 딴지를 걸고 빠져나오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규제로 정비사업 일감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웬만하면 조합의 요구 사항을 묵묵히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합은 조합원 각자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겠지만 최근 조합 운영방식이 건설사 부담을 높이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모습. 사진/뉴시스
재건축 중인 한 정비사업장 모습. 사진/뉴시스
서울 도심 모습. 사진/뉴시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