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카코포니 2집 '夢 (Dream)' 정규 앨범. 사진/튜나레이블
1집 ‘和(화)’로 상실의 아픔을 그려낸 카코포니(25·본명 김민경)는 지난달 1년여 만에 새 정규 앨범을 냈다. ‘夢(Dream)’이란 제목의 앨범은 돌아보니 사랑이 아니었던 몽중의 세계를 그린다.
4일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만난 그는 “어머니에게 바치는 1집을 마치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음악이란 확신이 들었다”며 “레슨을 받은 적도, 화성학을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지만 가슴 속에 떠오르는 감정, 분위기 자체로 음들을 찾는다. 이번 앨범은 내 음악적 재능에 대한 증명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총 12개의 곡들은 엄밀히 따지면 사랑에 관한 앨범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보다는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 착각했던 것들에관한 이야기다. ‘사랑을 했다고 믿었습니다. 이렇게 가슴이 뛰고, 이렇게 아프기도 하고, 이렇게 터질 것 같고, 이렇게 미칠 것 같았으니까요. 다 지나고 나니, 이건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직접 앨범 소개란에 적은 글이다.
지난 4일 서울 동부이촌동 인근 한강에서 만난 싱어송라이터 카코포니. 그는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다"는 사람들의 반응에 놀라 "최근 밝은 색의 옷을 입고 있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첫 곡 ‘귀환’부터 9번 곡(‘I am sorry’)까지는 사랑이라 믿은 착각, 이별의 과정이다. 사랑은 ‘달과 6펜스’의 타히티를 가는 듯한 환상 같다가도(‘타히티’), 서로를 아프게 하는 균열이(‘X’), 증오가 된다(‘제발’).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사랑은 흡사 실패 같다. 하지만 어떤 사랑에 진정 실패가 있을까. 앨범은 희망을 놓지 않고 몽중으로 넘어간다. 완전한 이별에도 과거 뜨겁게 아껴주던 마음의 온도, 서로의 기억이 영생하는 주술 같은 세계로.(‘Fate’부터‘Parallel world’까지)
“헤어진 연인한테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평행세계에서는 예쁘게 사랑하고 있을 거라고. 상황만 맞았다면 우린 예쁘게 사랑하고 있을 거라고.”
지난 4일 서울 동부이촌동 인근 한강에서 만난 싱어송라이터 카코포니. 그는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다"는 사람들의 반응에 놀라 "최근 밝은 색의 옷을 입고 있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번 앨범이 “진정한 사랑(다음 앨범 주제)을 위한 관문” 같다는 그에게 진정한 사랑을 물었다.
“진짜 사랑은 ‘너 때문에 미칠 것 같아, 죽을 것 같아’가 아님을 알아요. 곁에서 하루하루를 채워주는 일상 같은 존재, 결국 그런 게 아닐까요?”
그는 이번 앨범 역시 보통 뮤지션들과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다. 실제 악기 연주도, 화성학적 지식도 없이 기분을 나타내는 머릿 속 음들을 컴퓨터로 ‘실현’ 했다. 우선 메모장에 적어놓은 단상, 문장들로 분위기를 잡고, 컴퓨터를 꾹꾹 눌러가며 맞는 음악으로 치환한다.
“한음씩 눌러가는 모습을 보시면 정말 바보 같을 거예요. ‘음학’적으로 여전히 잘 몰라 작곡 후 몇몇 곡은 전문가들과 협의 과정을 거쳐요. 앞으로 작업량을 늘리려면 화성학을 배워도 좋지 않을까 생각 중이예요.”
밴드유랑 마지막 질문의 시간. 카코포니 새 앨범은 어떤 여행지로 표현될 수 있을까.
“달나라, 우주가 아닐까요. 보통의 음악처럼 단순히 사랑, 이별로만 끝나진 않거든요. 앨범은 사랑이 결국 실패할 수 없다는 메시지예요. 지구에선 말이 안 될 것 같은 이야기죠. 시공을 넘는 달나라나 우주로 가야하지 않을까….”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