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거대 소리 실험실’ 만든 본 이베어의 환상 교향곡

그래미가 점 찍은 밴드…‘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후보
12일 서울 예스24라이브홀서 두 번째 내한…1700여 관객 열광

입력 : 2020-01-14 오후 5:33:17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미국 밴드 본 이베어(Bon Iver)의 공연을 입체적으로 감상하려면 1시간 전 미리 가 있는 것을 추천한다. 시작 전 틀어주는 생경한 음악들이 그들 음악의 심연을 해석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12일 저녁 6시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이 경험을 했다. 10개가 길게 이어 붙은 좌우 스피커로 한 시간에 달하는 ‘본 이베어 추천리스트’를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이라기 보단 주로 실험과 파격에 가까운 소리 이음들. 
 
LP 판의 스크래치 같은 로우파이 음질(케어테이커 ‘Mental Caverns Without Sunshine’)로 시작한 이 여정은 영국의 통화 연결음(펭귄 카페 오케스트라 ‘Telephone and Rubber Band’)을 지나 따사로운 볼리비아 햇살 같은 아프로칸 쿠반 뮤직(이브라힘 페레르 ‘Boliviana’)에까지 닿았다. 고철을 다듬거나 종을 울리는 소리(콜렉션스 오브 콜로니스 오브 비스 ‘Fun’), 20분이 넘어가는 장엄한 프로그레시브 록(더바디 ‘Andromeda’)은 곧 핑크플로이드를 무대로 불러올 것처럼 관객들의 심박수를 높였다.
 
본 이베어 특유의 ‘실험 음악’ 기원을 탐색한 시간. 저스틴 버논(보컬)을 주축으로 한 6인의 밴드는 이날 저녁 7시 무대에 섰다. 앞선 음악들의 결을 잇듯 이들은 장내를 ‘거대 소리 실험실’로 만들어 버렸다.
 
12일 서울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린 본 이베어 두 번째 내한 공연. 사진/프라이빗커브
 
첫 곡 ‘iMi’부터 모듈러 신스로 매만진 기계 노이즈가 파편 조각처럼 튀어 댔다. 기타를 잡은 버논은 멤버들과 맑은 고음을 교차하며 ‘21세기 판 환상 교향곡’을 시작했다. 밀물, 썰물처럼 치고 빠지는 전자드럼과 베이스, 색소폰, 하모니카…. 록, 포크, 힙합, 가스펠 요소를 버무린 이 성스럽고 영적인 실험 음악에 1700여 관객 함성이 뜨겁게 들끓었다.
 
2006년 활동을 시작한 본 이베어는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팀이다. 오는 2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릴 그래미어워즈에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앨범’ 등 4개 부문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이 두 부문은 ‘올해의 노래’, ‘최우수 신인’과 함께 세계 대중 음악계 최고의 영예로 거론되는 상이다. 앞서 밴드는 지난 2011년 ‘제54회 그래미 어워드’의 ‘최우수 신인’, ‘최고의 얼터너티브 뮤직’ 앨범상을 동시 수상하며 세계 대중음악계에 파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공연 때 다섯 세션들이 함께 하지만 사실 밴드는 버논 1인 체제에 가깝다. 미국 위스콘신의 한 오두막집에 틀어박혀 쓴 곡을 추린 게 그의 데뷔작이며, 이후에도 모던 포크 기반의 실험적 곡들을 주도적으로 써왔다. 지난해 8월 발매한 정규 4집 ‘i,i’는 녹음실의 잡음 같은 소리와, 드럼과 관악단의 풍성함, 합창의 가스펠까지 더해 사운드 스케이프를 확장해 냈다. 2016년에 이어 두 번째인 이번 내한은 이 앨범 발매를 기념한 월드 투어 일환으로 진행됐다.
 
12일 서울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린 본 이베어 두 번째 내한 공연. 사진/프라이빗커브
 
첫 곡 ‘iMi’로 시작한 이날의 소리 실험은 버논이 인터뷰에서 여러차례 밝힌대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과정처럼 나아갔다.
 
“야훼” 라며 신명의 외침으로 시작하는 주술가 같은 풍경은(곡 ‘We’) 지직 거리며 끊어지는 단선적 울림들로(‘곡 Faith’), 동화 숲 요정이 튀어나올 것 같은 신비한 소리들(곡 ‘TOWERS’) 로 시시각각 변모했다. 때마다 오토튠으로 소리를 변조하는 버논의 음색은 고장난 로봇처럼 쓸쓸하고 구슬프다가도(곡 ‘HEY MA’), 흡사 동굴 괴수의 목소리(곡 ‘715’) 같은 환영을 일게 했다. 색을 달리하며 명멸하는 조명과, 드라이아이스로 덮인 홀이 비현실의 꿈, 어딘가처럼 느껴졌다.
 
실연과 이별, 상실, 영적 각성을 좇던 초기작에서 밴드는 점차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회적 계급, 계층에 관한 문제의식과 자연, 환경 문제를 연상시키는 가사들. 
 
밴드는 실제로 이번 투어 일환으로 각 국가 별 사회 공헌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공연 티켓과 머천다이즈를 묶은 패키지를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인권운동 시설에 기부하는 프로젝트다. 이날 공연 마지막 즈음 버논은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주목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세상에는 여전히 심각하게 상처받고 학대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에서는 도울 수 있는 단체나 조직이 필요합니다. 기부가 그들을 향해 할 수 있는 우리의 전부이지만, 그렇게라도 상황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랍니다.”
 
본 이베어의 주축 저스틴 버논(보컬). 사진/프라이빗커브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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