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의사가 전화로 기존 처방전 발급 지시, 무면허 의료 아냐"

복지부 상대 자격정지 취소 처분 소송서 원고 패소 원심 파기

입력 : 2020-01-27 오전 9:00:00
[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의사가 전화로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에게 기존과 같은 내용으로 처방전을 발급하도록 지시한 것은 무면허 의료 행위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원모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의사면허자격정지처분취소 소송에 관한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의사인 원씨는 지난 2013년 2월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에 부재 중인 상태에서 전화로 간호조무사 이모씨에게 지시해 전에 처방받은 내용과 같이 강모씨 등 3명에게 처방전을 발행하도록 했다. 원씨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아니면 진단서·검안서·증명서 또는 처방전을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거나 발송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의료법 제17조 제1항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 200만원이 확정됐다.
 
이후 복지부는 2017년 1월 원씨에 대해 '이 사건 위반 행위가 의료인이 아닌 간호조무사가 의료 행위를 하게 한 것이어서 구 의료법 제27조 제1항 위반에 해당한다' 등의 사유로 2개월10일의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에 원씨가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원고는 관련 형사 사건에서 이 사건 처분 사유와 동일한 사실관계로 유죄판결을 받아 그 판결이 확정됐는데,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이 형사재판의 사실 판단을 채용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면 이 사건 처분 사유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2심도 "이 사건 처분은 그 사유가 일부 인정되고, 그에 대한 처분의 양정도 적정해 정당성이 인정되므로 적법하다"며 1심판결을 유지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하지만 대법원은 원씨의 행위가 구 의료법 제27조 제1항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해 무면허 의료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심은 원고가 이씨에게 지시한 것은 처방전 작성·교부를 위한 세부적인 지시가 아니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원고가 의료인이 아닌 이씨에게 의료인에게만 허용되는 의료 행위인 '처방'에 필수적인 처방전 작성·교부 행위를 하도록 지시해 구 의료법 제27조 제1항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며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구 의료법 제27조 제1항의 무면허 의료 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강씨 등 3명은 종전에 원고로부터 진찰을 받고 처방전을 발급받았던 환자이므로 의사인 원고가 간호조무사 이씨에게 강씨 등 3명의 환자에 대해 '전에 처방받은 내용과 동일하게 처방하라'고 지시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처방전 기재 내용은 특정됐고, 그 처방전의 내용은 간호조무사 이씨가 아니라 의사인 원고가 결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설령 원고가 강씨 등 3명의 환자와 직접 통화해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채 이씨에게 처방전 작성·교부를 지시했다고 하더라도 '직접 진찰한 의사가 아니면 처방전 등을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구 의료법 제17조 제1항 위반이 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이씨가 처방전의 내용을 결정했다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 "의사가 처방전의 내용을 결정해 작성·교부를 지시한 이상 그러한 의사의 지시에 따라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환자에게 처방전을 작성·교부하는 행위가 구 의료법 제27조 제1항이 금지하는 무면허 의료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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