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하라면서 영업 압박…제약사 고충

겉으론 재택근무…안으론 "실적 부담줘" 영업사원들 불만

입력 : 2020-03-03 오후 2:33:56
[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코로나19 대책으로 재택근무를 도입했지만 업종에 따라 현장 업무가 불가피한 고충이 있다. 제약사 역시 영업직을 포함한 직군별 재택근무 행렬에 가세하고 있지만 이례적 조치에 현장에선 혼선이 빚어지는 모양새다. 
 
3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본격화된 코로나19 전국 확산에 신중론을 펼치던 국내 제약사들이 영업직을 비롯한 전사적 차원의 재택근무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파른 전염 속도에 의사 결정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코로나19 사태 속 국내 제약업계 재택근무 신호탄은 삼일제약이 쏘아 올렸다. 지난달 5일 긴급회의를 통해 영업부서 직원의 재택근무를 결정하고 공지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발 앞서 재택근무를 시작하긴 했지만, 국내사의 첫 공식 지침에 업계 이목이 쏠렸다. 
 
이에 따라 다른 국내사들도 속속 검토에 나섰다. 한미약품과 안국약품 대면영업을 온라인 마케팅으로 대체하는 등 사실상 자율 재택근무제를 채택했고, 2월 말 감염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합류사들도 늘었다. 업계 2위 GC녹십자는 이달 3일부터 6일까지 경기도 용인 본사 내 모든 임직원에 대한 재택근무 결정을 단행하기도 했다. 지난달 19일 피해가 가장 심각한 대구·경북 지역 영업사원을 시작으로 24일 전국 영업사원 재택근무 시행에 이은 확대조치다. 
 
이 같은 제약사들의 조치는 이례적이다. 제약사는 약국과 개인병원, 종합병원 등 크고 작은 영업처를 오가는 영업사원들이 전체 임직원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면영업이 주를 이루는 국내 제약업계 영업 문화 특성상 영업기회가 적어질 수밖에 없는 재택근무는 제약사 입장에서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은 사안이다. 과거 사스나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 사태 속 일부 글로벌 제약사를 제외하고 공식적인 재택근무 지침을 내린 국내 제약사가 없었던 배경 역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최근 전국 감염자 4000명 돌파 등 코로나19의 기형적 확산세에 병원마저 영업사원 방문을 꺼리게 되면서 울며겨자먹기로 재택근무를 채택하고 있다. 사실상 1분기 영업 포기도 불사한다는 각오다. 문제는 이 같은 본사 차원의 조치와 현장이 혼선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적 비상사태 속 결단을 내렸지만 실적 타격 최소화를 원하는 회사의 암묵적 태도가 가뜩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장 영업직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영업 일선에서 나온다. 
 
익명성을 기반으로 기업 직원들이 회사 내부 문제 등을 공유하는데 활용되는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제약사 영업사원들의 고민이 속속 공유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 1일에는 국내 한 제약사 영업사원이 '본사에서 재택근무를 지시했음에도 불구, 일부 지점장과 팀장이 병·의원 방문을 강요했다'며 시스템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의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재하기도 했다. 해당 제약사는 즉시 방문 시 주의를 당부한 것뿐 오해라고 해명했지만 최근 혼선을 빚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 국내 제약사 영업사원은 "기존 거래처의 경우 일정기간 방문을 하지 않아도 유지가 가능하다곤 하지만 사태가 언제 종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실적에 대한 부담이 상당하다"라며 "이미 1분기 실적 타격을 각오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식적인 재택근무를 지시했다 해도 회사의 눈치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전담병원 체제에 들어간 서울의료원 의료진이 3일 오전 선별진료실에서 진료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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